2009년 한국·아제르바이잔 국제초청패션전시회엔 색다른 작품이 출시됐다. 태극 문양과 노란색 별이 촘촘하게 뒤섞여 있고, 허리께에 검정 술이 길게 드리워진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다. 옷을 디자인한 이는 대구에서 의류패션 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베트남 유학생. 한국 전통 태극 문양과 베트남을 상징하는 별이 어우러진 '한·베트남 디자인 융합형' 작품은 전시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당시 수상자 팜 호 메이 안(32)씨는 최근 한국과 베트남 전통 문양 연구 논문으로 영남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제는 '한국 전통 문양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베트남 전통 문양 연구.' 올 8월 귀국과 동시에 모교인 하노이기술대 교수로 부임하는 그녀는 수업을 통해 베트남 학생들에게 한국 전통 문양을 알리는 역할도 하게 된다.
팜씨는 원래 시각디자인 전공자였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컴퓨터 그래픽 분야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터라 차라리 섬유 디자인 분야를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하자고 마음먹고, 남편이 유학을 왔었던 영남대에 2007년 박사로 입학했다.
한국 전통 문양을 활용한 섬유 디자인 전문가 이연순 교수(의류패션학과)는 "교수님 밑에서 한국 문양을 연구하고 싶다"는 베트남 학생의 요청을 받고 처음엔 난감해했다. 의사소통도 원만하지 않았고, 학생이 연구 과제로 삼은 한·베트남 전통 문양 차이를 지도하기엔 베트남에 대해 아는 것도 너무 없다는 생각에 "다른 교수에게 가 보라"며 거절했다.
그런 이 교수의 생각을 바꾼 사람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딸이었다. 딸의 지도교수는 언어도, 현지 적응도 서툰 외국인 학생을 선뜻 받아들였고 정성껏 보살폈다. "그분이 없었으면 공부를 못 마쳤다"는 딸의 설득에 이 교수는 팜씨를 받아들였다.
비교 연구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자료 수집을 위해 팜씨는 베트남 박물관과 사원, 유적지를 수시로 방문해야 했다. 이 교수는 그런 제자를 위해 사비로 연구비를 지원했다. 2010년 팜씨가 첫 아기를 낳으면서 생긴 출산 후유증 때문에 재수술을 하면서 입원 했을 때 아기를 대신 돌본 사람도 이 교수였다. 팜씨는 옆에 앉은 이 교수를 향해 "워낙 엄마처럼 돌봐 주셔서 '엄마 교수님'이라 부른다"고 했다.
학생이 한국의 문양을 공부하며 자신의 전통성을 찾았다면, 스승은 제자와의 인연으로 2009년 하노이기술대에서 한국 전통 자수를 토대로 디자인한 개인 전시회를 열며 베트남에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었다. 제자는 조만간 스승의 저서(직물디자인)도 베트남어로 번역 출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