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빈 인 더 우즈'의 초반, 숲속 오두막으로 놀러가는 젊은 남녀. 악몽이 다가오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캐빈 인 더 우즈’(The Cabin in the Woods, 드류 고다드 감독)를 보는 동안 뒤통수를 대여섯 차례는 얻어맞는 듯했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속에 기발한 상상력이 영화에 가득합니다.

영화 첫머리는 너무나 익숙한 할리우드 ‘난도질 공포영화’의 틀을 고스란히 따라갑니다. 커트(크리스 햄스워스)등 서로 친구 사이인 남녀 다섯 명이 외딴 숲 속 오두막에서 1주일을 함께 보내려고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특별할 것 없을 것 같은 이 오두막집이 순식간에 악몽의 현장이 됩니다. 괴물들이 인간을 죽이는 피의 살육이 시작됩니다. 의대생 · 미식축구 선수 등 똑똑하고 능력 있는 주인공들은 괴물들에게 맞서 싸우지만, 점점 더 끔찍한 상황 속으로 수렁처럼 빠집니다.

'캐빈 인 더 우즈'의 한 장면. 오두막에서 계속되는 참혹한 사건 때문에 점점 패닉 상태로 빠지는 인물들.

이 영화는 오프닝에서 ‘여러분 예상과는 다른 영화’라는 암시를 살짝 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오두막 부근에 호수가 있고, 일행 중에 섹시한 매력의 여성이 있는 등 너무나 익숙한 초반 장면은 공포영화 그 자체였습니다. 이 영화가 별 고민없이 상투적인 클리셰(판에 박은 듯 진부한 표현)들로 채운 2류영화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찾아간 음산한 분위기의 주유소에서 좀비처럼 생긴 늙은 주인이 “당신들 조심해야 할 거야”라는 식의 기분나쁜 말을 뇌까리는 대목을 보면서 속으로 묘한 웃음이 낄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공포 영화의 상투적 설정들만 골라서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는 것 자체에서 독특하고 기발한 맛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낯익은 클리셰들을 마구 꺼내 도마 위에 놓고는 뭔가 색다른 요리, 예상 밖의 상상력을 ‘꽝’하고 보여주려는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예감은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캐빈 인 더 우즈'의 한 장면. 전 세계 곳곳의 끔찍한 상황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통제 시설의 경악할 만한 모습이다.

그 악몽의 오두막이 사실은 특수한 목적을 띤 정부의 비밀 실험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예상 못 했던 길로 들어섭니다. 아폴로 우주선 발사를 총지휘하는 NASA(미 항공우주국) 관제센터를 닮은 기지에서 낯선 요원들이 패닉에 빠진 젊은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모습은 경악스럽습니다. 오두막에 놀러 간 젊은이들이 겪는 모든 상황은 정부에 의해서 감시·관리되고 조작되고 있습니다.

좀비에게 꼼짝없이 당하기만 할 것 같은 남녀들은 차츰 ‘큰 힘’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그때부터 영화는 공포영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향합니다. 미국 정부가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도 예상 밖이어서 충격을 줍니다.

공포에서 시작하여 SF적 분위기로 옮아가는 이 영화는 비빔밥과 닮았습니다. 호러· SF· 액션 스릴러 같은 여러 요소가 뒤섞여 하나하나 요소들을 맛볼 때와는 다른 제 3의 맛을 안기는 것이죠. 여러 히어로들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독특한 재미를 안겼던 ‘어벤져스’의 감독인 조스 웨던이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아 장르 뒤섞기의 재능을 발휘합니다. SF적 외계 괴물에서부터 미국 전설에 나온다는 괴물들까지 온갖 무시무시한 것들을 스크린에 총출동시켜 벌이는 유혈극은 긴장과 웃음 사이를 오가며 관객에게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황당한’상상력을 맛보면서 ‘정부가 한강 교량 밑에 마징가 Z 로봇을 감춰놓고 국가 비상시에 작동시킨다’는 식의 우리나라 ‘유머’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린 이런 상상력을 실없는 농담에서만 발휘하는데 외국의 재능있는 영화인들은 이 만화 같은 상상력을 스크린에 그럴싸하게 펼쳐댑니다.

‘캐빈 인 더 우즈’는 영화적으로 새롭다는 점이 첫 번째 미덕이라고 여겨집니다. 장르의 관습이나 관행을 충실히 따르는 대신 그 틀까지도 도마에 올려놓는 것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은 이 영화에선 ‘뭣 좀 새로운 건 없을까’를 고민하는 창조적 자세가 읽힙니다.

또 영화 속 여러 대목 속엔 음미할 만한 비유나 상징, 풍자도 있습니다. 특수기관과 오두막집 젊은이들의 관계란 실제 현실 속에서 공포영화 감독과 배우들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서로 먹고 먹히는 영화 속의 싸움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힘 있는 자와 약한 자의 갈등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인간의 ‘사랑’같은 감정도 실은 화학 물질에 의해서도 좌우된다는 설정은 음미할 만합니다.

물론 이 영화의 거침없는 상상력엔 만화 같은 황당함도 느껴집니다. 사람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별일 아닌 것처럼 묘사한 듯한 분위기는 낯설고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양 극단으로 나뉩니다. 기발하고 참신하고 창의적이어서 재미있다는 관객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고 비판합니다.

‘캐빈 인 더 우즈’는 상투적인 영화들의 따분함에 싫증 난 사람들이나, 미국식 공포영화의 팬들을 열광시키는 그 무엇이 분명히 있는 영화입니다. 단, 괴물들과 사람들이 뒤엉켜 벌이는 유혈 액션극 같은 건 말만 들어도 싫은 관객들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