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영어를 잘 못해 통역을 쓰겠다"고 했더니, 그가 "나도 한국말을 못하니 괜찮다"고 했다. 미국 TV시리즈 '로스트'(2004~2010)에서와 달리 매끄러운 억양의 한국어였다. 여수엑스포 미국 측 문화사절로 방한한 한국계 미국 배우 다니엘 대 킴(44·김대현)을 3일 서울 용산구 한 호텔에서 만났다.
다니엘 대 킴은 부산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다. 1994년 영화 '아메리칸 샤오린'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영화와 TV에서 단역과 조연을 맡아오다 김윤진(39)과 함께 한국인 부부로 여섯 시즌을 출연한 드라마 로스트 시리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1960~70년대 인기리에 방송됐던 '하와이 파이브-오(하와이 50 수사대)'의 동명 리메이크작(CBS TV 방영 중)에서 형사 친호 캘리를 연기하고 있다. 그는 "로스트를 통해 20여년 배우생활 중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서게 됐다"며 "'하와이 파이브-오'에서 주인공을 맡게 된 것도 다 로스트 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로스트'는 마냥 달콤하기만 한 기억은 아닌 듯했다. "미국 인기 드라마에서 한국어로만 대사하는 첫 번째 캐릭터라는 자부심이 컸는데 한국 시청자들의 반응을 접하며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시리즈 초기 한국 시청자들이 인터넷 등에서 그의 어눌한 한국어를 문제 삼은 게 상처가 됐다는 뜻이다. "6~7세 때 이후로는 영어를 빨리 배우려고 한국어를 안 썼습니다. 학교에서 생김새도 다르고 영어도 못한다고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한국분들의 '로스트'에 대한 평가가 저의 한국어 실력에만 집중될 때 영어로 놀림당하던 그때가 생각나더라고요."
다니엘 대 킴은 산드라 오(그레이 아나토미) 등과 함께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한국계 배우로 꼽힌다. 하지만 그도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작가는 아시아계 배우를 생각하지 않고 대본을 쓰기 때문에 오디션을 통과하기가 어려웠다. 간혹 아시아계만 뽑을 때는 미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몰려온 배우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최근 TV시리즈 '워킹데드'의 스티븐 연, 영화 '디스터비아'의 아론 유 등 한국계 배우들의 활약을 "희한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열정이 한국계 배우들의 차별성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다니엘 대 킴은 박찬욱(스토커)·봉준호(설국열차) 감독 등이 잇따라 할리우드로 진출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재능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 만큼 한국 감독들은 한국적 시각을 담아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강제규 같은 한국의 톱 레벨 감독과 스티븐 스필버그 간에는 전혀 질적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거친 폭력에 코미디를 접하는 식으로 미국에 없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한국 영화의 놀라운 점"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겨울연가,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드라마도 인상 깊게 봤고, 영화 중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등 '복수 3부작'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니엘 대 킴은 앞으로 스페셜올림픽(지적장애인들을 위한 국제 스포츠 대회) 홍보대사로도 나설 예정이다. 그는 "스페셜올림픽에 관심이 많아 2년 전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가 최근 조직위로부터 홍보대사를 제안받았다"며 "특히 한국 대회(2013년 평창)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