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프랑스의 휴양지 리비에라의 해변.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 크루즈를 만끽한 이가 있었으니,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던 코코 샤넬이었다. 크루즈에 탐닉한 나머지 샤넬은 의도치 않게 피부를 검게 태우게 된다. 당시만 해도 '잉글리시 로즈룩(English rose look)'이라 해서 창백하리만큼 뽀얀 피부가 주목받던 시절. 하지만 이 '샤넬의 검게 탄 피부'는 피부색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바꿔놓았다. 그녀의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했던 여성들이 너도나도 샤넬을 따라 피부를 구릿빛으로 태우면서 '태닝(tanning)'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초반 샤넬로부터 시작된 태닝 붐. 이젠 그 영향이 한국 여성들에게까지 미쳤다. 미백(美白)에 유난히 집착해온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최근 들어 태닝한 피부가 건강미의 상징이 됐다. 여름 피서지에서 두부처럼 하얀 살을 내밀기가 민망하단 하소연도 들려온다. 태닝, 그 원리는 무엇이며 예쁘게 태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부과 전문의에게 태닝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태닝의 원리는 뭔가.

"피부가 자외선에 노출되면 표피 내의 멜라닌 색소가 증가한다. 그로 인해 '원래의 피부색'에 '추가적인 피부색(facultative skin color)'이 더해져 피부색이 짙어진다. 인체의 광 방어 작용(햇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것)으로 인한 산물로 보면 된다. 사실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 손상, '광노화 현상'이기 때문에 피부 건강엔 좋을 게 없다."

―태닝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 특히 얼굴과 목은 기미·주근깨가 생기기 쉬우므로 꼭 바를 것."

―태닝은 태우는 거고 자외선 차단제는 타는 걸 방지하는 제품이 아닌가.

"선탠은 자외선 A·B로 유발된다. 자외선 B는 파장이 짧고 순간 에너지가 많아 노출되면 화상 위험이 있는 반면, 자외선 A는 파장이 길어 피부에 깊이 침투하지만 화상 유발 염려는 없다. 자외선 B를 차단하면 화상의 염려를 덜면서 태닝할 수 있단 얘기다. 이 때문에 자외선 B 차단지수인 'SPF'는 높고, 자외선 A 차단지수인 'PA'는 낮은 차단제를 바르고 태닝을 하면 효과적이다."

―어떤 태닝 제품을 바르는 것이 효과적인가.

"피부가 건조해지는 걸 막기 위해 미리 보습제를 발라 방어막을 형성해 주는 게 좋다. 보습제를 바르고 나서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태닝 오일을 발라야 한다.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오일을 바르면 얼룩이 생길 수 있으므로 반드시 물기를 제거하고 오일을 발라야 한다."

―태닝에 적당한 시간은?

"여러 번에 걸쳐 서서히 태우는 게 중요하다. 첫날은 피부를 안전하게 적응시키기 위해 오후 2~3시 이후에 10분 정도, 둘째 날은 20분 정도 태닝하고 20분은 그늘에서 쉬는 패턴을 유지한다. 하루 총 선탠 시간이 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자. 자외선이 강한 오전 11시~오후 2시는 금할 것."

―피부가 하얀 사람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태닝은 잘 안 되는데.

"피부색이 흰 사람들은 멜라닌 세포의 활성도가 낮기 때문에 자외선에 노출되면 일광 화상을 입어 얼굴이 벌게지기 쉽다. 사실 안 하는 게 좋다. 굳이 하고 싶다면 자외선 차단제를 잘 바르고 일광노출 시간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서서히 늘려가며 피부반응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

―햇볕 쨍쨍 내리쬐는 날 태닝하는 게 효과적인가.

"흐린 날 하는 걸 더 권한다. 햇빛이 강한 날은 일광 화상을 입기 쉽고, 주근깨·기미 등의 색소성 병변과 피부암 발생의 위험이 크다. 흐린 날은 자외선 B가 줄어들지만 투과성이 높은 자외선 A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태닝을 하기에 적당하다."

―인공 태닝이 더 안전한가.

"태닝 기계는 자외선 A만 쪼여 피부를 검게 만든다. 하지만 자외선 A가 한꺼번에 다량 방출돼 피부노화를 가속할 우려가 있고, 기계 이상으로 자외선 B까지 피부에 흡수되는 경우도 왕왕 있어 조심해야 한다."

―태닝한 다음 사후 관리는?

"햇빛에 노출돼 건조해지고 손상된 피부에 수분을 공급해주는 게 급선무이다. 보습제를 듬뿍 발라주고, 물을 충분히 마시고, 비타민 섭취도 충분히 해준다. 태닝 후 피부는 약해진 상태이므로 외출할 때는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