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결혼한 한가영(가명·28)씨가 시댁에 보낸 예단은 총 3400만원이다. 항목별로 보면 크게 세 가지였다. ①1000만원짜리 이불·반상기·은수저 세트 ②현금 2000만원 ③400만원짜리 구찌 가방이었다. 가방을 받아든 시어머니는 흡족한 얼굴로 예비 며느리 한씨에게 신용카드를 건넸다. "고맙게 잘 들고 다닐게. 아가, 너도 네가 갖고 싶은 가방 있으면 이걸로 사렴."
한씨는 신랑과 함께 백화점에 갔다. 디올·프라다 등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명품 브랜드 매장을 돌며 200만~300만원짜리 가방을 개수로 3개, 총 900만원어치 샀다. 한씨의 한 달 봉급은 300만원이다. 한씨는 "사면서도 '내가 좀 과한가' 싶긴 했지만 어머니가 마음대로 고르라고 하시기도 했고, 남들도 다 나처럼 한다"면서 "솔직히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명품 가방을 사보겠느냐"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명품 가방이 결혼할 때 반드시 주고받아야 하는 필수 항목이 됐다. 신부가 신랑 집으로 예단 보낼 때 반드시 명품 가방을 넣고, 그 답례로 시어머니도 며느리에게 명품 가방을 사주는 일이 보편화된 것이다. 양가가 합의해 예단을 생략했다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여자들끼리 가방은 하나씩 주고받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같은 명품 가방에도 '서열'이 있다. 소득 수준에 따라 부유층·중산층·서민이 갈리는 것처럼 가방에도 일정한 계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특정 가방을 선택한다기보다, "내 수준은 이 정도"라는 심리로 선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단 얘기다.
일부 부유층은 1000만원 넘는 에르메스 가방 등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예단으로 많이 오가는 가방은 주로 1000만원 이하 제품들이다. 그중에서도 고소득층과 일부 중산층이 특히 선망하는 가방이 샤넬이다. 샤넬 가방은 400만~800만원이다. 직장인 강혜경(가명·34)씨는 "200만~300만원짜리 가방은 월급을 모아서 살 수 있는데, 샤넬 가방은 월급으로 사긴 부담스러우니 결혼할 때 다들 '이참에 마련해야겠다'고 벼르게 된다"고 했다. 그보다 빠듯하게 사는 서민들 중에는 "샤넬은 못 받아도 루이비통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루이비통 가방은 보통 100만~400만원이다.
유성렬 한국결혼문화연구소장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 '무슨 가방 받았다'고 주변에 과시하려는 심리가 강하다"고 했다.
너나없이 명품 가방을 주고받다 보니, 애써 모은 자기 돈으로 결혼하는 젊은이들마저 저축을 헐어 가방을 사는 경우가 생긴다. 지난 2월 부모 도움 없이 자기 돈 3000만원으로 결혼한 이정수(가명·28)씨는 결혼식 한 달 전 예비신부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300만원짜리 프라다 가방을 사줬다.
그는 "두 달치 봉급에 가까운 액수라 솔직히 부담스러웠지만, 여자친구가 어디 갈 때마다 남들 가방을 힐끗힐끗 보고 백화점 명품 매장을 말없이 바라봐서 어쩔 수 없이 사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