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전천자(篆千字)'의 '군(君)'. 허목 글씨 '君'과 흡사하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2010년 조선 중기 문신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이 쓴 전서(篆書) 글씨 한 점을 보물(592-3호)로 지정했다. 부산의 한 소장가가 갖고 있는 이 글씨는 허목이 쓴 편액글씨 가운데 가장 크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알려진 글씨 내용은 '애민우국'(愛民憂國).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한다'는 뜻으로 풀었다. 힘찬 필체로 써내려간 허목의 이 글씨는 당대 조선 사대부의 애민 의식과 애국심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주목받았다. 허목은 숙종 때 대사헌과 이조판서, 우의정을 지냈으며 그림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한 대학자였다. 그는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의 1인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기에 허목의 편액 보물 지정 소식은 언론에서도 많이 다뤘다.

1년6개월 뒤인 지난 4월 한 시민이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유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허목의 글씨는 '애민우국'이 아니라 '애군우국'(愛君憂國)이라는 주장이었다. 도장을 새기며 전서를 공부한다는 이 시민은 '중국전각대자전'의 '군'(君)자 표기와 정암 조광조의 '절명시'(絶命詩)에서 '애군우국'이라고 표현한 사례를 제시했다. 당시 사대부들은 백성이 아니라 군주를 중심으로 나라를 걱정했다는 것이다. 이 시민은 "보물을 지정하면서 이런 잘못을 저질러서야 되겠습니까. 공부하다 하도 답답해서 글을 올린다"고 했다. 이렇게 '오독'(誤讀) 시비가 벌어진 것은 허목 글씨가 전서(篆書)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민'(民)인지 '군'(君)인지 쉽게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수 허목의 전서체 글씨‘애군우국’(愛君憂國). 문화재위원회가 2010년 보물 지정 당시‘애민우국’으로 잘못 읽었다가 최근‘애군우국’으로 바로잡았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회의에서 이 시민의 제보를 정식 의제로 삼아 논의에 부쳤다. 보물 지정 당시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 A씨는 뜻밖에 "최근 민원에서 제기한 것처럼 '애군우국'의 오독"이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허목의 전서풍을 따른 공제 윤두서(1668~1715)의 '전천자'(篆千字)에 보면 '군'(君)을 허목 편액에 나오는 것처럼 썼다는 것이다. 여러 자전(字典)을 찾아봤더니 역시 '민'(民)이 아니라 '군'(君)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이에 따라 보물 592-3호 '허목 전서 애민우국' 명칭을 '허목 전서 애군우국'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문화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화재위원회가 한 시민의 지적에 따라 '바로잡습니다'를 내보내게 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명칭 변경 예고 기간을 거쳐 허목의 편액 명칭을 바로잡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