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 감독의 영화 '연가시'(내달 5일 개봉) 속의 배우 문정희(36)는 흡사 전사(戰士)를 연상시킨다. 살인 기생충에 감염된 수십명과 거친 몸싸움을 벌이고, 20L짜리 생수통도 통째로 들고 마신다. 박 감독이 "가장 독한 한국 여배우 중 한 명 일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2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문정희는 "참고할 롤 모델도 없는 새로운 캐릭터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영화는 사람의 뇌를 조종해 자살을 유도하는 변종 기생충 연가시가 퍼지며 벌어지는 대규모 재난 상황을 그렸다. 문정희는 연가시에 감염된 '경순'을 연기한다.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한 인간이자 남편(김명민)과 함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싸움을 벌이는 엄마 역할이다. 그는 "영하 20도 한겨울에 촬영하는 등 몸이 힘든 장면도 많았다"며 "특히 생수통 장면에선 20L 생수를 6통이나 마셨다"고 했다.

문정희는 바람의 전설(2004), 쏜다(2007)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박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세 번이나 작품에 캐스팅해준 게 고마워 시나리오도 안 보고 상대 배우도 모른 상태에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문정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1기 출신. 장동건(중퇴)·이선균·오만석 등이 동기다. 그는 "한예종에서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많이 시켰는데 그게 연기의 바탕이 됐다"며 "어렵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때 동기들과 작품을 함께 해보고 싶다"고 했다.

재난 영화‘연가시’에 출연한 배우 문정희가 카메라 앞에 섰다.

문정희가 대중 앞에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2006년 SBS 드라마 '연애시대'였다. 그는 남자 주인공(감우성)의 첫사랑으로 나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드라마 직후 시련이 찾아왔다. "2년반 정도 어떤 역할도 들어오지 않고 오디션을 봐도 늘 떨어졌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온 듯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정희는 "시련을 치열하게 살며 이겨냈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덜기 위해 대학교 때부터 배웠던 살사댄스의 강사로 나섰고,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태권도나 달리기 같은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알아보는 분들 때문에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 조금씩 일이 풀리더라고요."

문정희가 자신의 이름과 연기력을 대중에 확실히 인식시킨 작품은 지난해 KBS 주말드라마 '사랑을 믿어요'였다. 그는 촌스러운 아줌마 김영희를 현실감 있게 연기하기 위해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하고 구멍 난 러닝셔츠를 입었다. "철부지에 푼수 같은 아줌마를 연기한 이후 어디를 가든 '아줌마 이미지'로 통하고 있다"며 깔깔 웃었다.

'연가시'는 문정희의 첫 상업영화 주연작.

그는 "좋은 배우가 목표"라고 했다. "좋은 배우란 오래가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늘 깨어 있고 그 변화를 연기에 담아내야만 오랫동안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