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디자인한 거란다." "에이 거짓말! 엄마가 수족관을 만들었다고?"

'2012 여수 세계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엑스포장. 적어도 2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최고 인기관인 아쿠아리움 '한화 아쿠아플라넷' 안에서 모자(母子)의 대화가 오간다. 물고기 구경에 정신이 쏙 팔린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말을 건네는 엄마. 여수 엑스포 아쿠아리움을 설계한 건축가 한기영(48·간삼건축 본부장·사진)씨다.

건축가의 손길을 거쳐 아쿠아리움이 설계됐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건축가가 중년의 여성 건축가란 사실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한 본부장은 '아쿠아플라넷' 외에 동양 최대 수조가 설치될 '제주해양과학관'(7월 중순 개관), 우주선 모양의 '아쿠아플라넷 일산'(2014년 개관) 등 아쿠아리움 3개를 잇달아 설계했다. 어느덧 '수족관 건축가'란 별명이 생겼다.

"바다와 접하는 여수 연안에 있는 바위의 한 부분이 수족관이 된 것처럼 설계했어요. '자연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느낌을 살렸지요." 엑스포장에서 만난 한 본부장이 아쿠아플라넷을 가리켰다. 외관에 적용된 모티브는 여수의 리아스식 해안 형성 과정인 퇴적·융기·침식이었다. 해식(海蝕) 동굴을 연상시키는 출입구는 침식작용을, 카페테리아 앞 계단식 데크는 퇴적층을, 거대한 바위가 쩍 갈라진 채 솟은 것 같은 전체적 형상은 융기를 상징한다. 연면적 1만6400㎡(4960평)로 코엑스 아쿠아리움(8600㎡)의 약 2배. 저수량(6030t)은 코엑스 아쿠아리움보다 2.5배 많다.

여수 엑스포 '아쿠아플라넷'3층에 있는 원통형 수조. 4층의 대형 수조와 연결돼 있어 바다표범이 오르내린다.

'물고기 관람'이라는 건물의 용도상 아쿠아리움 설계의 방점은 외관보다는 내부에 있다. "백화점의 상품처럼 물고기를 진열해 둘 게 아니라, 아프리카 사파리같이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인 '물고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 사이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며 관람하는 거죠." 한 본부장은 일본 아시히야마 동물원이 시도한 '행동전시'를 벤치마킹했다. 행동전시란 자연 상태에서 동물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다양한 위치에서 동적으로 관람하도록 하는 전시 방식이다.

하나의 물고기를 위·옆·아래 혹은 다른 프레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수족관을 설계했다. 바다표범이 사는 수조는 3~4층이 연결돼 있다. 4층에 있는 일반 수조의 바닥이 원통으로 뚫려 3층으로 연결된다. 관람객들이 4층에선 바다표범이 일반 수조에서 노니는 모습을, 3층에선 길쭉한 원통형 수조를 따라 아래위로 수직으로 유영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폭 16.2m, 높이 6m의 대형 수조는 이런 고려가 집약된 극적인 공간. 세계에서 3번째로 만든, 대형수조 안의 직경 6.2m 돔 모양 수조에 들어가면 해저에서 물고기떼와 함께 노니는 느낌이 든다. 대형수조 옆에 있는 카페에 앉으면 풍경이 달라진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대형 스크린처럼 펼쳐지던 수조가 작지만 아기자기한 소극장의 스크린처럼 변한다. "같은 풍경이라도 다른 프레임의 창을 통해 내다보면 느낌이 다르죠. 같은 논리로 수조 하나를 여러 방식으로 보게 함으로써 관람객이 색다른 감동을 느끼게 했어요."

(위 사진)아쿠아플라넷 외관. 퇴적·침식·융기 과정으로 만들어진 여수만에서 모티브를 땄다, (가운데 사진)동양최대 수족관이 있는 '제주해양과학관' 조감도, (아래 사진)7월 개관.2014년 완공 예정인 우주선 모양의‘아쿠아플라넷 일산’.

선택적 관람이 가능하게 동선도 달리했다. 일반적인 아쿠아리움은 입구와 출구를 하나로 정하는 '강제동선'을 적용해 일률적인 순서로 관람해야 한다. 하지만 아쿠아플라넷은 메인 층인 3층에서 3개의 관을 선택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한 본부장은 "수족관은 정교한 기술과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이 결합돼야 하는 까다로운 건축 형태"라며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됐다는 아쿠아리움에 담긴 숨은 건축 상식을 들려줬다. "거대한 수조 창을 잘 보세요. 투명한 유리처럼 보이지만 아크릴이랍니다. 아크릴은 서로 용접해 붙일 수 있어 흔적 없이 거대한 수조 창을 만들 수 있는 거랍니다. 여수의 경우 아크릴창 6개를 이어 붙여서 하나인 것처럼 만들었죠."

'입주자'가 동물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설계 변경도 감수해야 했다. 수조 설계가 끝났는데 당초 '입주자' 명단에 없었던 바이칼물범이 들어오게 됐다. 바이칼물범은 자연채광을 좋아해 벽에 창을 내야 했다.

한 본부장은 "일본과 비교하면 아직 우리네 수족관은 단편적으로 물고기를 보여주는 정도의 초보적 수준"이라며 "지역 특성을 살려 각 연안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수족관을 설계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