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5년 선조(1567~1608)가 당대 최고 명필 한석봉(1543~1605)을 불렀다. 사액(賜額·임금이 직접 현판을 내림) 서원에 보낼 글씨를 쓰게 하기 위해서였다. 부르는 대로 받아만 쓰라고 했다. '원'-'서'-'산' 한석봉은 열심히 받아 썼다. 마지막 글자는 '도'. 그제야 자신이 쓰는 것이 '도산서원', 퇴계 이황(1501~1570)을 기린 서원의 현판임을 알았다. 선조는 '천하의 한석봉도 도산서원 현판이란 사실을 알면 붓이 떨려 현판을 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단어를 거꾸로 부른 것이었다. 도산서원 현판 글씨의 마지막 자가 오른쪽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듯 보이는 유래다. 지금 도산서원에 걸려 있는 현판은 모사본이다.

이 현판 원본이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한다. '목판, 선비의 숨결을 새기다' 특별전. 27일부터 내달 22일까지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과 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연다. 무료이며 오전 11시~오후 8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전문 연구원이 해설도 곁들인다.

전시품들은 안동 국학진흥원의 장판각이 2001년 문을 연 뒤부터 모은 목판 6만4000여점 중에서 엄선한 것들이다. 붓글씨로 이름났던 선조의 초서 어필, 추사 김정희의 '화수당(花樹堂)' 현판을 비롯해 유명 서원과 집, 정자에 걸었던 당대 명필들의 친필 현판, 17~20세기 영남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들의 문집과 족보·유교 경전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 시나 경구를 새긴 서판 등 총 120여점이다.

양녕대군의 초서 '후적벽부(後赤壁賦)'는 2008년 남대문 화재 때 훼손됐다 복구된 현판 '숭례문' 이외에는 유일하게 전해 오는 것이다. 안동 풍산의 체화정(棣華亭)에 걸려있던 단원 김홍도의 '담락재(湛樂齋)' 현판은 김홍도의 글씨가 별로 전해오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02)580-1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