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55)의 신작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전작 '야끼니꾸 드래곤'을 빼놓고는 절대 이야기할 수 없다.

'야끼니꾸 드래곤'이 A라면,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A´다. 두 연극은 내용이나, 형식에서나 형제와 다름 없다.

1960년대 간사이 지방에서 곱창 가게를 운영하는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경계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끄집어낸 '야끼니꾸 드래곤', 광복 직전인 1944년 남도의 외딴 섬을 배경으로 '홍길이네 이발소' 가족과 그곳에 주둔한 군인들의 이야기인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야끼니꾸 드래곤' 등 기존의 작품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꾸준히 보여준 정씨가 이번에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역사의 희생자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또 한국 자체를 배경으로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서 차별받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상처 받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아가는지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자체를 다룬다. 아버지 홍길과 어머니 영순 부부, 그리고 진희 선희 미희 정희 네 딸들은 얼핏 '야끼니꾸 드래곤'을 연상케 한다. 팔자와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무언지 보여주는 아버지, 한국 엄마 모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어머니 캐릭터 역시 빼다 박았다.

하지만 사건의 중심에 부모가 있었던 '야끼니꾸 드래곤'과 달리 이번 연극에서 부모는 자식들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를 통해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 그 중에서도 격동에 휘말리기 쉬운 네 자매와 그의 연인들, 즉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레 초점이 맞춰진다.

네 자매는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대한다. 가장 전쟁과 상관없어 보이던 왼쪽 다리를 저는 첫째 진희는 오른쪽 다리가 없는 일본인 장교 시노다와 사랑에 빠지면서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한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둘째 선희는 전쟁을 이용하고 학교 교사인 미희는 가책을 느끼면서 전쟁에 간접적으로 협력한다. 술 마시는 것만 좋아하는 것 같던 막내 정희는 가장 적극적으로 일본과 맞서 싸우는 투사였다.

정씨는 이를 통해 한국인 마을 사람들과 일본인 주둔군이 어울려 사는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설정한 섬에서 양국의 적대 관계를 넘어 소통가능성을 본다. 결혼 등으로 모든 자식들을 떠나 보내고 고즈넉해진 이발소에서 두 부부가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킬 때 관객들도 아픔을 삼키며 웃음을 머금게 된다.

'야끼니꾸 드래곤'의 막내아들 '도키오',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의 막내 정희 등 죽은 인물들이 극의 마지막에 행복한 모습으로 잠깐 등장하고, 정씨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벚꽃이 또 흩날리는 등 극적 장치들도 여전하다. 언뜻 게으른 재탕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연극을 통한 감동의 울림이 여전한다는 점에서 외려 더욱 공고해진 '정의신 월드'를 보여주는 장치다.

본래 영화용어로 예술적 창작품에는 그것을 창작한 사람의 개성이 반영됐다는 뜻의 작가주의라는 말이 있다. 정씨는 이번 작품으로 작가주의 대표주자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 중인 서울시창작공간 남산예술센터의 2012 시즌 네 번째 작품이다. 정씨와 오랜 기간 협업한 극단 미추가 공동 제작사로 나섰다.

'야끼니꾸 드래곤'에서 일본 배우들과 함께 밀도 있는 앙상블을 보여준 박수영, 고수희, 김문식을 비롯해 '적도 아래의 맥베스'로 주목 받은 서상원, '쥐의 눈물'에서 억척스런 연기를 보여준 염혜란 등이 출연한다. 7월1일까지 볼 수 있다. 1만5000~2만5000원. 02-758-2150

정의신 월드의 완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