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얘기 한 토막. 마산 아가씨를 만난 서울 신사의 프러포즈다.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시겠어요?/어디 예?//요 아래 찻집이 좋습디다/언제 예/지금 당장 말입니다/아이라 안켔습니꺼."
유안진 시인이 펴낸 새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문예중앙)가 꿈꾸는 세계가 이와 같다. 시인의 창작 비밀은 '거짓말로 참말하기'. 일상적 반어법의 시적 구현이다. 시골 어른들이 늘 하는 말인 "문닫고 나가거라/문닫고 들어왔나?"도 마찬가지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거꾸로 로꾸거로'를 소리 내어 읽는다.
'오르다가 내려가며 투덜거린다/ 산이 높아 평지인지 평지가 낮아 산이 되는지/ 꽃 피어 봄 오는지 봄 와서 꽃 피는지/ 왼편 오른편도 거꾸로인지/ 어둠은 밝음에서 밝음은 어두움에서/ 태어나는 것인지 돌아가는 것인지/ 앉으며 일어서며 중얼거리다가/ 모자를 고쳐 쓰고 신발끈을 조인다// 신발은 아무리 새것이어도 머리에 쓰지 않고/ 모자는 아무리 낡아도 발에 신지 않으니/ 거꾸로 로꾸거로 생각을 돌려봐도/ 캄캄한 암흑 속 아몰아몰 아지랑이뿐'(전문)
시인은 계간지 '시인수첩' 여름호에 자신의 시론(詩論) 한 토막을 공개했다.
시는 'ㄴ'이라는 받침 하나가 모자라서 신(神)이 못 되었다는 절묘한 표현이 어울리는 한글의 글자모양이라는 것. 이런 차원에서 보면 신은 '말씀'이고 시는 '말'이다. 종교경전이나 성현의 어록 같은 '말씀'은 "참말로 참말하기"이지만, '말'인 시는 "거짓말로 참말하는 언어예술"이라는 것. 하나 더. 무엇보다 단순한 언어예술이 아니라 "언어경제학적인 언어예술"이어야 한다고 했다. "알사탕처럼 입에 굴러다니는 짧은 시"여야 한다는 뜻이다. 알사탕 같은 시 87편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