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학부모와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부산의 한 입시설명회장. 그 입구에 지친 모습의 50대 남성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따금씩 그를 알아보고 위로를 건네는 수험생 학부모들이 지나갔다.

인근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정대호(50)씨. 그는 지난 2009년 12월 전남 화순으로 1박 2일 체험학습을 떠난 고2 딸 다금(당시 17세)양을 주검으로 맞이해야 했다. 싸늘하게 식은 딸의 얼굴에는 멍과 상처가 있었다.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온라인 게시판에는 이른바 ‘정다금 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날 밤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풀리지 않은 그날 밤의 미스터리

2009년 12월 18일 새벽, 전남 화순의 OO리조트 12층. 학생들은 이미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정양은 급우로부터 30분 이상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 S양은 술에 취한 정양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가 얼굴에 물을 뿌리고 세면대에 얼굴을 부딪치게 해 상해를 가했다. 그리고 정양은 새벽 5시쯤 12층에서 떨어져 숨졌다. 당일 벌어진 사건의 핵심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 당시 같은 방에 있었다는 학생들의 진술을 중심으로 단순 자살로 결론지었다. 정양을 폭행한 S양은 “성적문제, 우울증, 용돈문제, 부모의 부부싸움 문제로 다금이가 애초에 자살하고 싶어했다”고 진술했다.

석연치 않았다. 정양은 성적이 전교 50등 이내로 우수한 편이었고, 정신 병력은커녕 활달한 성격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더군다나 정양의 부부는 동네에서 금실 좋기로 소문난 사이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와 딸의 주검을 확인한 정양의 어머니는 눈 부위에서 의문의 멍 자국을 발견했다. 학교 안팎으로 이번 사건이 학교폭력의 결과라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정양의 부모는 발인 하루 전 장례를 포기하고 수사기관에 부검을 요청했다. 안면부의 상해가 추락사와는 관계없는 폭행의 흔적으로 밝혀졌다. 유족은 자살로 결론내린 경찰의 수사에 즉각 반발했다. 같은 방을 썼던 가해자들의 일방적 주장이라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체험학습을 떠나기 전 폭행 가해자 S양이 정양의 미니홈피에 ‘12층에서 떨어뜨리겠다’고 글을 남긴 사실이 밝혀지며 의혹을 키웠다.

2010년 11월 폭행을 주도한 S양만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나머지는 처벌도 받지 않았다. 학교에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폭행 때문에 자살했다는 증거가 없다’, ‘교사들이 순찰도 돌고 소지품도 검사했다’는 이유였다.

부모가 반발해 부산시교육청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사건 발생 2년 3개월만인 지난 2월 재판부는 살해 주장에 대해 “직접적인 증거가 없고, 동종 전과가 없으며 S양이 다른 방에 있었다는 증언이 일치한다”며 일축했다. 괴롭힘과 자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자살할 정도의 괴롭힘이 아니었고, 사건 이전에 괴롭혔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씨가 매일 아침 입실시간 30분 전쯤 학교 앞에 딸을 데려다줘도 “S양이 자기 등교 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매일 지각을 했던 정황 등은 지속적인 괴롭힘의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정씨는 수사 과정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검경(檢警)의 수사 과정이 너무 길고 늦었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높아 담당 검사에게 ‘수사를 서둘러달라’고 요청했는데 돌아온 것은 ‘학생들의 수능 준비로 어렵다”는 답변뿐이었습니다. 그 사이 수차례 엇갈리던 가해 아이들의 증언은 하나로 모이고 있었죠.”

 ◆ 1인 시위의 목적은 관련 교사들의 처벌과 재수사

지난 2월 민사소송 판결에선 학교폭력 사건 중 이례적으로 재판부가 교사의 과실을 인정했다. 부산지법은 “K여고 교사들의 공무수행상 과실로 인해 정양이 사망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부모에게 6354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를 근거로 정씨는 지난 4월말부터 “관련 교사들을 파면하라”며 매일 아침 출근길에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23일 정씨가 입시설명회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유도 이 행사를 부산시교육청에서 주관했기 때문이다.

판결에 따르면, 사건 당시 학생들의 술 단속을 소홀히 한 교사들은 당일 지정된 야간 순찰 역시 지키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12층에 7명의 교사가 있었음에도 새벽 2시 이후 술에 취한 학생들은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 특히 정양의 담임교사는 이날 밤 학생들과 함께 술을 마신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교 교사들의 은폐에 대한 증언도 2년이 넘도록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학교 출신 A(20)씨는 “사건 직후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선생님이 ‘산 사람도 중요하니 부산 가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정양의 친구 B(20)씨 역시 “교사로부터 은폐 압력을 받았다”며 “부검과 재수사에 들어갔을 때 다금이와 친했던 친구는 옆 반 교사로부터 ‘너 때문에 재수사에 들어가게 됐다’는 핀잔을 들어야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교폭력 전문가는 “교사, 수사기관의 대응이 의혹을 키운 면이 분명 존재한다”며 “더욱 명백히 밝히지 못하면 학교폭력 사건 중 가장 억울한 사건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문가는 “이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는 지금쯤 대학생이 되었을 당시 친구들의 용기뿐”이라며 당시 정양 동창생들의 적극적인 증언을 촉구했다.

정대호씨의 1인 시위는 기약 없이 계속될 예정이다. “우리 부부가 영안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학교는 ‘우리는 책임 없다’고 했습니다. 죽는 순간부터 이 학교 학생 취급을 받지 못했죠. 사건 조사도 사실상 피해자 부모의 몫이었어요.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 증언이 너무 많은 게 가장 속상합니다.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은 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