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2시 전남 해남 송지면의 국도. 경찰관들이 대낮인데도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었다. 단속이 시작되자 술에 취해 농사용 트럭이나 오토바이 등을 몰던 운전자들이 속속 붙잡혔다. 술기운에 얼굴이 불콰해진 운전자들은 소주와 막걸리 냄새를 풍겼다. 2시간 동안 다섯 명이나 걸렸다. 대부분 농사를 짓는 농민으로, "새참을 먹으면서 술을 함께 마셨다"고 했다. 임순기 송지파출소장은 "농촌에는 새참 때 마시는 술을 원기회복제나 음료수 정도로 여기는 음주 문화가 있어, 오후 2~4시 사이 집중 단속을 한다"고 말했다.

오후 2시부터 음주단속… 지난달 31일 전남 해남의 한 농촌에서 새참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한 농민의 트럭과 오토바이가 충돌해 경찰이 조사를 하고 있다.

'낮 2시 음주 단속'은 우리 농촌 사회의 술 문제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너그러운 음주 문화는 우리 농촌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소의 조사에서 '술에 취해 일으키는 시비나 말다툼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농수산업 종사자는 16.2%로 사무직(7.5%)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자칫 큰 사고를 부를 수 있는 음주 운전에도 관대했다. 인제대 보건대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농림수산업 종사자의 음주 운전 경험률은 30.1%로 사무직(26.4%)·서비스업(22.9%)에 비해 높았다.

지난 5월 31일 오후 1시 20분쯤 전남 해남의 한 농촌마을 농로(農路). 농사용 트럭과 오토바이가 충돌해 전남 해남경찰서 소속 송지파출소 경찰들이 출동했다. 50대인 운전자 두 명에게서 소주와 막걸리 냄새가 났다. 농사를 짓는 두 사람은 각자 새참을 먹으면서 소주와 막걸리를 섞어 서너잔씩 마신 상태에서 운전했다.

(위 사진)쉬는 틈틈 한두병… 충북 충주의 한 농촌 마을에서 농민들이 휴식시간에 술을 마시고 있다. 우리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래 사진)“술 말고 달리 놀거리도 없는데…” 19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의 한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인들의 곁에 술병이 놓여 있다.

농촌의 술 문제는 최근 고령화와 만혼율 증가로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외로움을 술로 달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지만 주변에서 과음이나 폭음을 말릴 수 있는 가족들은 없어져, 자정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자녀는 도시에 나가 살고 부인과는 몇 년 전 사별한 경북 청송의 김모(73)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막걸리 3병을 챙겨 밭에 나와 온종일 마신다. 그는 "남자 혼자 살다 보니 끼니 챙겨 먹기가 어려워 막걸리로 배를 채운다"고 했다. 청송시니어클럽 황진호 관장은 "농촌에는 스트레스를 풀 만한 여가시설이 부족하고, 절주(節酒)교육을 해도 이미 오랫동안 만성적으로 술을 마셔온 노인들이 '이 나이에 술 끊으면 무슨 재미냐'고 반응하곤 한다"면서 "농촌에서 가정불화나 의처증 같은 게 더 많이 생기는 것도 대부분 술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전북 김제의 알코올질환 전문병원인 신세계병원 관계자는 "농촌이 고령화되고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다 보니 할 일이라고는 술 마시는 것뿐이란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농촌형 음주는 가정해체의 원인이 된다. 20대부터 농사일을 하며 매일 술을 마셔온 이모(65)씨는 부인과 이혼 소송을 하고 있다. 만성적인 음주자인 이씨는 20여년 전부터 술만 마시면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부인과 성인이 된 자녀는 "더는 못 참겠다"며 그의 곁을 떠났다. 이순옥 충남 연기군 보건소장은 "오랜 음주로 인해 배우자가 간경화 등의 병이 생기면 경제적인 문제로 심하게 싸우거나 간호를 하다 지쳐 떠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천자토론] 술에 너그러운 대한민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