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빠가 술에 취해 나를 때릴까, 안 때릴까." 박상혁(가명·12)군은 작년 11월 긴급 출동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가 "제일 걱정하는 게 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사업에 실패한 박군 아버지는 2007년쯤부터 1주일에 5번 정도는 취했다. 술에 취하면 마구 때리는 박씨를 참지 못하고 박군 어머니가 2010년 가출하자, 폭력 대상이 박군으로 바뀌었다. 2011년 11월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야구방망이로 집안 유리창을 다 깼다. 이날 몽둥이로 박군의 머리와 엉덩이도 마구 때렸다. 박군은 병원에 실려가 머리 부분을 10바늘 꿰맸다.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주폭(酒暴)들에게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는 피해자는 스스로 보호할 힘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주폭들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가족과 격리될 정도로 심각하게 학대받은 아동은 82%에서 가족의 음주 문제가 나타난 반면, 비교적 경미한 학대를 받아 가족과 격리되지는 않은 아동 중에는 4%만이 '술 문제'가 있는 가정에 속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가족과 지내는 아동일수록 심한 학대를 받았다는 뜻이다.
평생 술 취한 아버지에게 시달려온 대학생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발생했다. 작년 1월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는 대학생 손모(27)씨가 아버지(59)와 다투다 목을 조르고 깨진 병을 휘둘러 아버지를 숨지게 했다. 사건 전날 밤에도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해 손씨 어머니를 때리고 아들과 심하게 다퉜다. 경찰에서 손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술만 취하면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왔는데, 그날 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주폭 가족으로부터 맞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가장 우선으로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술에 찌든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방치되고 버려지는 현실도 심각하다.
전남의 한 가정폭력상담소에 신고된 강모(4)군은 4년여 동안 "부모 말을 왜 이렇게 안 듣느냐"며 매번 술 취한 아버지(35)로부터 폭행을 당해왔다. 하지만 알고 보니 강군은 선천적으로 귀를 듣지 못하는 아이였다. 술에 찌들어 사는 강군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오히려 술만 마시면 아이를 때려온 것이다.
심지어 불결한 환경에서 노숙하는 자녀가 나오기도 했다. 2007년 6월 이모(16)군과 한 살 터울 남동생은 집 근처 상가에서 일주일째 노숙을 하다가 신고를 받은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을 받게 됐다. 이군 형제는 2004년 어머니가 사망한 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해 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군 형제를 보살피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대신 매일 밤마다 소주 5병씩을 마셨다.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와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집 안에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먹을거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자는 게 더러운 집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집에 있으면 아빠가 술 취해 매일 밤 욕을 하거든요." 이군은 상담을 받으며 이같이 말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무관심과 방임도 분명한 아동학대"라며 "특히 장기간 술에 취한 채 생활하는 보호자와 함께 생활했던 아이들은 '쓰레기 집'에서 라면만 먹으며 생활하기도 한다"고 했다.
장모(12)군 아버지도 아내가 2004년 폐렴으로 사망하자 아들을 사실상 '방치'했다. 상담사들이 2010년 7월 현장조사를 나갔더니 장군 아버지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오래도록 깎지 않아 덥수룩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급비로 월 70여만원을 받으면 대부분 술값으로 썼다. 장군은 최근 2년 동안 복지관에서 받은 라면이나 과자,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냉장고도 없어 복지관에서 받은 김치에는 구더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