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육학과 입학을 목표로 공부 중인 정대준(서울 휘문고 3년)군은 내신 경쟁이 치열하기로 소문난 휘문고(강남구 대치동)에서 전교 3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는 자신이 서울대 입시를 준비하게 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중학생 시절, 내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게임으론 100만 명 중 2등이었어요. 공부에 자신이 없다 보니 게임 성적으로 자존심을 세웠죠. 학교 수업은 안중에도 없고 학원도 다니는 시늉만 했어요. 시험 땐 학원에서 나눠준 유인물로 대충 공부하고 중위권 정도만 되면 그걸로 만족했습니다."
나만의 학습법 찾은 뒤 성적 수직 상승
학습일기 쓰며 공부자세 수시로 점검
◇'게임왕', 게임 대신 공부에 미치다
그가 달라진 건 고교 입학 직전.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토록 좋아하던 게임이 어느새 '스트레스 요인'이 돼 있었다. "게임에 몰두하느라 학원에 빠져 부모님께 혼나기 일쑤였죠. 게임 아이템 구매 사기를 당하기도 했어요. 게임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점점 늘더라고요. '(게임 하는 게) 이렇게 힘들 바엔 차라리 그만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교 진학 이후 정군은 게임에 쏟던 열정을 오롯이 공부에 돌렸다. '공부에서도 게임만큼 좋은 성적을 받아보자'고 작심한 것. 첫 걸음은 '내게 맞는 공부법 찾기'였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공부법 책과 각종 학습법 사이트, 언론에 소개된 최상위권 학생의 공부 비결을 샅샅이 훑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고 1 1학기는 '공부법을 공부하는' 시기였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중학교 때까지 다니던 서너 개의 학원을 전부 끊었어요. 대신 학교 자습실 사용을 신청, 지금껏 매일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여러 가지 공부법을 시도했고 시행착오도 겪으며 제게 맞는 방식을 찾았어요. 그러면서 학원 도움 없이 혼자 하는 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전교 91등이었던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1학기 기말고사 때 전교 31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일단 자신감이 생기자, 공부에 대한 열의는 더욱 불타올랐다. 정군은 그해 2학기 기말고사에서 전교 17등이 됐고 2학년 첫 중간고사에선 전교 3등까지 뛰어올랐다.
◇"시험 경향 알면 공부 방향 잡혀요"
정군의 성적 향상 비결은 '철저한 자기 분석'이다. 그는 △자신의 학습 상황 △시험 결과 △학교 수업 형태 △시험 출제 경향 등을 수시로 분석, 점검했다. 그 결과는 고 1 때부터 쓰기 시작한 '학습일기'에 고스란히 기록했다. 학습일기엔 '내가 이번 시험에서 최상위권이 되지 못한 이유' 같은 내용이 빼곡하게 담겼다. 그는 "처음엔 공부는커녕 하루에 몇 시간씩 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고역이었다"며 "공부할 때 생기는 고민거리나 어려움 등을 학습일기에 털어놓고 그간의 태도를 반성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만든 체크리스트 등을 활용, 자신의 학습 상황도 수시로 확인했다.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했는가 △자습 시간 공부계획은 구체적인가 △오늘 공부할 때 집중력이 흐트러진 적이 있는가(흐트러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각 과목을 고루 공부하고 있는가 △주말 계획엔 1주간의 복습과 휴식이 적절하게 배치돼 있는가 하는 것들이 대표적 예. 점검 내용은 다시 학습일기에 옮겨졌다. 정군은 "공부 내용을 점검하면서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주간 열심히 공부했다면 자신을 아낌없이 칭찬하며 상을 줘보라"고 귀띔했다.
"제 경우, '공부 편식'이 심한 편이었어요. 성적이 나쁜 과목은 멀리하고 좋은 과목은 더 많이 공부하곤 했죠. 심할 땐 (좋아하는) 국사 공부에 수학·국어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정도였어요. 고 2 때부턴 싫어했던 수학 공부 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렸는데 막상 수학 성적이 오르니 공부가 재밌어지더군요. 나중엔 수학을 '전략 과목'으로 삼을 정도까지 됐죠."
정군은 학교 수업과 시험에 대한 분석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일단 수업별 특징을 파악한 후, 공부법을 구성했다. 예를 들어 고 2 때 '문학 A·B' 과목은 △문학 A·B 진도를 동시에 나감(1주 5시간, 각 50% 비중으로 출제) △부교재(고 2 모의평가 2개년 기출문제)에서 10% 출제되며 문제는 비교적 쉬운 편 △수업 내용은 인터넷 강의와 유인물로 예습한 후 수업 시간에 주요 내용 복습할 것 등이다.
정군은 시험공부를 할 때도 전년도 내신과 이전 시험 기출문제를 살펴보면서 과목별 출제 경향부터 분석했다. △전년도 기출문제 활용 정도 △교과서 표현 반영 정도 △문제 선지 속 함정 유무 등에 특히 유념했다. 정군은 "시험 출제 경향을 알면 공부 방향이 저절로 잡힌다"고 강조했다. "공부를 안 해본 학생들은 책을 펴도 어떤 부분을 공부해야 할지 모르는데 출제 경향을 분석하면 교과서에서 어떤 부분을 공부해야 할지가 보입니다. 교과서가 (시험 출제자인) 선생님 입장에서 보여 '나라면 여기서 이런 문제를 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거든요."
시험 후엔 과목별로 결과를 분석했다. 이를테면 공통영어의 경우 △듣기는 장문으로 출제돼 어려웠고 △여러 개(1~4번) 문제가 하나로 묶여 나오리라고 예상치 못했으며 △교과서의 주제·내용 일치 문제가 빈칸 유형으로 변형 출제돼 까다로웠다는 등의 분석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시험 전마다 공부 노하우를 반 친구와 공유해 본인은 물론, 친구들의 성적까지 올린 적도 많다. 이런 경험을 살려 고 2 땐 인터넷 학습사이트에서 공부법 상담에 나서기도 했다.
◇성적 향상의 최대 적은 '스트레스'
정군이 현재와 같은 성적을 올리기까지 겪은 최대 난관은 '스트레스'였다. 고 1 2학기 중간고사 땐 '전교 1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컨디션 난조로 성적이 곤두박질 친 적도 있다.
"저처럼 공부를 늦게 시작한 친구에겐 공통적인 문제점이 있어요. 중학교 때부터 최상위권을 유지해온 친구들을 따라잡으려면 그들보다 곱절로 공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한창 힘들 땐 '열심히 한다'는 칭찬마저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자꾸 위축돼요. 당시 저희 반에서 1·2등 하던 친구들도 저만큼 많이 공부하진 않았거든요. 스스로 정한 계획을 조금만 못 지켜도 저 자신을 심하게 자책하곤 했습니다."
이후 정군은 명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글·쌤앤파커스) 같은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기도 했다. 고 3이 된 올해부터는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과 독서토론 클럽 활동도 시작했다. "하루 14시간씩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적은 시간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는 거예요. 목표를 크게 세워 멀리 내다보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