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Skin),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
니나 자블론스키 지음ㅣ진선미 옮김ㅣ양문ㅣ328쪽ㅣ1만7800원
넓이 약 2㎡(약 0.6평), 평균 무게 4㎏. 성인 한 사람의 피부를 벗기면 이렇다. 피부는 '신체 내부의 장기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덮개'. 이 덮개는 미생물의 침입을 막고, 태양의 유해한 광선을 차단하며, 체온을 조절하는 신체 기관이다.
그러나 피부는 오로지 '색깔'이라는 단어와 만났을 때, 그 정치적 의미가 폭발했다. 흑인종과 백인종, 황인종이라는 색깔 구분은 인종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수단이자, 문명과 미개를 가르는 상징으로 활용돼왔다. 피부색은 곧 인종을 나타내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피부색 자체는 인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아무 쓸모가 없으며, 피부색은 단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정리한다.
◇피부 진화의 역사
사람 피부색은 짙은 갈색에서 창백한 상아색까지 매우 다양하다. 적도 부근 거주자의 색이 가장 짙고, 극지로 가면서 점점 옅어진다. 피부색은 멜라닌 양에 의해 결정되는데, 지구 표면에 닿는 자외선 양이 위도에 따라 다른 만큼 멜라닌 색소의 양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적도처럼 자외선이 매우 강한 지역에 사는 원주민의 피부색이 짙은 것은 피부의 멜라닌 양을 최대한 늘리는 쪽으로 진화한 결과다. 멜라닌은 과도한 자외선으로 인해 DNA가 손상되는 것을 막고, 남성의 정자 생산과 여성의 태아 형성에 필수적인 엽산이 파괴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기능을 한다.
극지방으로 갈수록 피부색이 옅어지는 것도 햇볕의 양과 관련이 있다. 자외선에 너무 적게 노출되면 몸에서 비타민D 생산량이 줄어든다. 때문에 볕이 약한 북구에 사는 사람 피부에는 햇볕 가리개인 '멜라닌'이 덜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기원을 '까만 사람들'이라 규정한다. "약 600만년 전 열대 아프리카 지역에서 출현한 현생 인류의 조상은 짙은 피부색을 갖고 있었고, 인류가 다른 대륙으로 퍼져감에 따라 비타민D의 합성을 촉진하기 위해 피부색을 옅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즉, 피부색은 인종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진화적 선택의 문제다.
'피부색=인종의 표식'은 유럽의 식민화 정책에 그 원인이 있었다. 힘으로 아프리카를 식민화하던 시대, 침략자인 백인은 짙은 색 피부를 '불량한 인격'이나 '도덕성 결핍' 같은 의미로 치환했다. 그리고 노예무역을 합리화했다. 검은 피부를 지닌 주민들은 얼굴이 붉어져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걸 '그들은 감정도 없고 수치심도 없는 열등한 존재'라는 증거로 삼았다. "피부색은 우리 조상이 과거 어떤 자외선 환경에서 살았느냐를 보여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피부는 사회문화적 소통의 도구
인간은 피부를 갖고 '장난'치는 유일한 동물이다. 사람만이 피부 장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시한다. 피부는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지 보여주는 개인적 태피스트리(tapestry) 역할도 한다. 인간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피부를 노출시키고, 덮고, 색칠하고, 문신을 새기고, 흉터를 만들거나 구멍을 뚫는다.
신체 '미술'의 역사는 길고 복잡하다. 인류가 피부 모양을 변화시키기 위해 최초로 사용한 방법은 자연에 있는 색소를 이용해 장식하는 것이었다.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발견된 약 8000~9000년 전의 바위그림, 암각화, 조각상을 보면 당시의 신체 페인팅 양식이 상당히 정교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최초로 화장술이 널리 행해졌다. 문신은 고대부터 행해진 신체 미술의 한 형태. 늦어도 신석기 시대에 이미 문신이 영구적 신체 장식으로 이용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것은 알프스 빙하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냉동인간 '외치'의 몸에 새겨진 문신.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문신은 소속감과 기념, 자기보호 등을 강조해 자신이 어떤 사회적 단위에 동조한다는 뜻을 선언했다.
책은 피부의 미래까지 예견한다. 미래에는 피부에 이식한 칩으로 신용거래를 하고 가상현실 기술을 접목해 원거리에서도 '촉감'을 주고받는 등 문자 그대로의 피부를 넘어설 것이라 본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도 그랬듯 인류는 앞으로도 피부를 통해 말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피부는 곧 우리 자신이다."
피부와 피부색의 진화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니나 자블론스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인류학과 교수가 인류의 피부 형질이 다양해진 생물학적 역사부터 오늘날 피부가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까지 짚어가며 인종주의의 토대가 된 피부색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다. 특히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피부를 분석, 고찰한 것이 이 책의 미덕. 친절하고 간결한 문장 덕에 책장은 쉬이 넘어가지만, 동어반복이 많아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