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1시40분쯤 만취한 강모(52)씨가 서울 영등포동의 허름한 실내 포장마차에 들어서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오모(50)씨가 강씨에게 "일행이 올 테니 옆자리로 가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씨는 "말버릇 봐라. 너 오늘 한번 죽어봐라"며 오씨를 넘어뜨린 뒤 배를 마구 밟았다. 오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강씨는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강씨는 이 동네에서 악명 높은 주폭(酒暴)이었다. 전과 42범인 강씨가 지난 1월부터 술을 먹고 벌인 행패는 경찰이 확인한 것만 73회. 강씨의 이런 술버릇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이 넘게 지속돼왔는데, 결국 이날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영등포 지역 상인들은 강씨 이야기를 꺼내자 다들 고개를 저었다. 20년간 가게를 운영해 온 이모(63)씨는 "잡혀들어가도 금방 벌금 몇푼 내고 나와서, 벌금까지 물어내라며 또 행패를 부리니 입 닫고 있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하루가 멀다고 술에 취한다. 하루 술 먹는 성인 숫자는 598만명(추정치·질병관리본부). 하루 국내 술 소비량(주류산업협회)은 맥주 952만병, 소주 896만병에 이른다. 매일 성인 6~7명 중 한 명은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는 얘기다.
술은 술로 끝나지 않는다. 연간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주폭자(酒暴者)에 대한 신고 건수만 35만9542건(2010년)이다. 경찰지구대 업무의 26.6%가 술 취한 사람들 뒤처리다. 경찰력의 단순 경제적인 손실만 연간 약 500여억원이다. 더구나 취객들이 활개치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는 살인·도둑·성폭행범이 활개치는 시간과 겹쳐 치안 손실은 따지기도 어려울 정도다. 회사마다 술냄새 풍기며 출근하는 직원이 수두룩하고, 술 먹고 길거리를 헤매는 것이 알코올 중독자만의 일이 아닌 게 우리의 현실이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술에 취해 길거리를 다니는 것 자체가 범죄로 취급받는 외국과 비교해 우리의 인식과 제도는 너무 안이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