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랑스가 한국에 멀고도 가까운 나라가 된 것은 와인이나 명품백 때문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던 무렵 프랑스인들이 세웠던 명동성당은 훗날 한국 민주화운동의 소도(蘇塗)가 되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동포들이 훨씬 많이 살고 있었던 블라디보스토크 대신 상해(上海)에 세워진 이유는 일제와 경쟁하던 프랑스 제국의 조계(租界)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1948년 한국의 존재가 국제적 승인을 획득한 제3차 유엔총회는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무심히 올랐던 파리 에펠탑 정면의 샤이오궁전에서 열렸다. 1919년 임시정부 때부터 한국이 채택했던 대통령제는 미국 대통령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왕(王)을 대신한 대통령'이라는 역사문화적 측면을 비롯해서 프랑스 대통령제와 유사한 측면도 많다.

얼마 전 치러진 프랑스 대선은 한국의 정치세력, 특히 진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프랑스식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데 진보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를 통해 후보자를 두 명으로 압축한 후 유권자에게 최종선택의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오랫동안 뜻을 세우고 준비해온 다수의 후보자들에게 정정당당하게 입후보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 그리고 상위 득표자 2인을 대상으로 한 2차 투표를 통해 투표 참가자 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는 통합적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한다.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 번 더 투표장에 가는 수고만 감수한다면, 스스로의 최종선택권을 지킬 수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 정치사는 1963년과 1967년 박정희 후보에 맞서기 위해 윤보선 후보로의 단일화가 이루어진 이후, 1980년과 1987년 양김(兩金) 단일화 협상, 1997년 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 2007년 정동영·문국현 단일화 협상 등에서 보여지듯 대선 후보 단일화를 위한 물밑협상과 이벤트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왔다. 교육감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후보 단일화를 위한 탈선과 불법이 끊이질 않았다.

1980년대 양김의 후보 단일화를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 대 독재'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가 좌절되고, 소수파에 기반을 둔 대통령들이 탄생했다. 이제 더 이상 여론조사 수치로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다. 이제는 보다 진보적인 자세로 다양한 후보자들의 출마를 보장하되 궁극적으로 통합의 리더십을 가능하게 해주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굳이 말 많고 탈 많을 개헌을 하지 않더라도 여야가 합심하여 공직선거법만 개정하면 되는 일이다.

둘째, 세계적인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 이루어진 프랑스의 정권교체는 한국의 진보가 특히 부러워하는 점일 것이다. 한국의 진보가 프랑스사회당처럼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한다면 프랑스사회당의 '반(反)종북' 노선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 '북(北)'은 파리의 북역에서 기차만 타면 갈 수 있는 모스크바를 상징했다. 1920년 투르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프랑스 좌파는 북쪽에서 내려온 레닌의 지령을 놓고 분열했다. 다수파는 레닌의 지령대로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버리고 공산당이 되었고, 소수파는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고수하면서 사회당이 되었다. 스탈린(공산주의)과 히틀러(파시즘)가 대결했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스탈린노선을 추종했던 프랑스공산당은 더욱 크게 성장했다.

그렇지만 프랑스사회당은 종북(從北) 노선을 따라가지 않았다. 프랑스사회당은 프랑스공산당에 맞서서 우파와의 싸움 이상의 싸움을 벌였다. 모스크바를 추종하는 프랑스공산당의 종북노선을 애국좌파적 입장에서 경멸했다. 프랑스사회당이 프랑스공산당과 싸운 또 다른 이유는 공산당이 사회당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한 약자들의 분노와 젊은이들의 불안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가 프랑스사회당처럼 애국적 중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어 대선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종북주의자들과 갈라서는 정도가 아니라 보수보다 더 치열하게 그들과 싸워야 한다.

명쾌하지 않은 것은 진보가 아니다. 진보라면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를 더 이상 우상화하지 말고, 유권자들의 최종선택권을 보장하는 결선투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제도 이상으로 명쾌해야 할 것은 이념이다. 프랑스사회당은 히틀러와 싸울 때는 공산당과 협력했지만, 스탈린에 대한 맹종(盲從)은 용납하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의 진보는 '민주 대 독재'라는 이분법에 고착되어 공산주의의 변형인 인민민주주의나 모택동식 신민주주의에 대해 명쾌한 선(線)을 긋지 않았다. 한국의 진보가 프랑스사회당처럼 대선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프랑스사회당이 퇴보적 이념들에 대해 얼마나 명쾌하게 선을 그었던가를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