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다윈의 진화론은 변이, 유전, 경쟁의 세 핵심어로 설명될 수 있다. 다윈은 생물의 형질에는 충분한 변이가 존재하고, 그들이 이른바 '생존 경쟁'을 거치며 주어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한 변이가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면, 진화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이 세 조건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고, 역으로 이 세 조건만 갖춰지면 진화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두고 진화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부른다.

학자들 중에는 가끔 인간은 진화하기를 멈췄다고 단언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진화란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연계에는 무수히 많은 유전적 변이가 존재하며 그들은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경쟁을 거듭하고 있다. 설령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언젠가 진화를 설명하는 최적의 이론이 아닌 걸로 판정되더라도 그것이 진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어디까지나 방법론일 뿐이고 진화는 이론의 타당성에 상관없이 벌어지는 자연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던 2009년에 교황청도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의 강령과 양립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최근에 출간된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라는 책에는 다윈의 진화론이 인간이 고안한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 50가지 중 7위에 올라 있다. 이는 '민주주의'(14위)나 '자본주의'(42위)와 같은 거대 이데올로기 체제를 앞선 순위이다. 심지어는 '과학적 방법'이 진화론 바로 다음인 8위에 올라 있다. 진화론도 결국 과학적 방법론의 하나일진대 그만큼 각별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리라. 영국 사람들은 이제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뉴턴보다 다윈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세상은 이처럼 점점 더 다윈을 끌어안고 있는데, 과학 교과서에서 말(馬)의 진화 부분을 삭제해도 좋다고 인정한 최근 교과부의 결정은 한마디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고작 이러자고 그동안 교육부는 과학기술부를 끌어안고 있었더란 말인가? 이 나라의 교육과 과학 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7주 동안이나 TV에서 '다윈 지능'을 열강한 나 자신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