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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북(Red Book)
칼 구스타프 융 지음|김세영 옮김|부글북스|410쪽|2만5000원

2010년 몬트리올, 세계의 분석심리학자들은 사뭇 경건한 표정으로 융의 'Liber Novus: The Red Book'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융이 16년 동안 공들인 책인 데다, 자녀들이 대중공개를 꺼려 사후 50년 만에 출판된 탓도 있다. 융 분석심리학자들에게 '레드 북'은 마치 사해쿰란에서 발견된 외경(外經)이나 9세기 튀니지의 푸른 코란(Blue Quran) 같은 성스러운 경전이다. 갈색 노트가 검은색 노트로, 다시 붉은 가죽으로 제본된 것도 연금술의 상징과 관련 있을 듯싶다. 라틴어 Liber Novus는 '새 책'으로 번역하지만, Liber에는 자유, 나무의 속살,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라는 뜻도 있다.

◇프로이트로부터 배척당하다

선배 프로이트는 한때 융을 자신의 이론을 물려받을 제자로 매우 반겼다. 그러나 자신의 교조적 '리비도 이론'에 반기를 들자 정신분석학회에서 융을 완전히 축출시킨다. 종교와 영성(靈性)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융을 '사이비 의사', 심지어는 조금 맛이 간 사람으로 매도했다. 이에 융은 그동안의 외부 활동을 접고 자신의 세계로 칩거하게 된다. 레드북은 바로 이 시점부터 쓰기 시작한 내밀한 고백이다. 융의 다른 연구서들과 달리 다양한 이미지가 대화형식으로 자유롭게 담긴 일종의 무삭제·무교정 일기인 셈이다. 그러나 제3의 인물을 내세운 플라톤의 '대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적 '고백록', 현실에 집중한 루소의 '고백록'과는 다르다. 영혼의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는 융 분석심리학의 중요 기법 중 하나인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이 있어 가능한 얘기다. 적극적 상상이란 선불교의 간화선이나 수피 이슬람의 체험처럼 무의식의 바닥으로 내려가 내면의 상을 시각과 청각으로 느끼는 과정을 말한다.

◇그리스신화·유대전설·힌두·불교까지 망라

책에는 신, 악마, 은자, 황소뿔이 난 거인, 악마, 지하세계의 젊은 처녀, 뱀, 알에 갇힌 신, 희생제물, 필레몬, 살로메 등과 같은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융이 그린 도판도 이집트, 이슬람, 신비주의 기독교, 연금술, 티베트의 다양한 이미지·내용과 중첩이 된다. 세계의 신화·전설·종교에 대한 융의 내밀한 반응이므로 일반인은 이해 못할 부분도 많다.

융은 신(神)을 때로는 복수의 화신으로, 고통을 당하는 모습으로, 심지어는 냉담하게 죽어가는 인물로 그린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융을 불경죄인이라 오해하진 말자. 다만 기독교뿐 아니라 힌두교·불교·조로아스터교·도교 등을 그 정신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뿐이다. 처녀의 이미지도 그렇다. 강간과 폭행을 당해 희생제물이 된 여성, 시체의 간을 빼고, 눈을 파먹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목을 자르게 하는 여성도 등장한다. 그렇다고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여성성, 즉 '아니마의 이미지가 폭력적이며, 융은 마초 안티페미니스트'라 비난할 것은 없다. 아니마는 어디까지나 무의식을 설명하는 추상적 개념이다.

또 다른 중요 등장인물인 필레몬도 그리스신화, 유대전설, 성경에 대한 지식 없이 이해할 수가 없다. 필레몬과 그의 아내 바우시스는 변신한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유일하게 알아본다. 융은 신의 존재를 "알아보는 사람"인 필레몬과 자신을 동일시했을 수 있다.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나는 안다"라고 대답했었다. 융 자신도 레드북 속 필레몬과의 대화를 통해 진짜 자신을 만나, 작은 자아를 자유롭게 했을 수도 있겠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의사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 그가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천착한 동서양 종교와 영성(괈性)에 관한 내면의 이야기를 기록한‘레드 북’이 사후(死後) 51년 만에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사후 50년 만에 공개된 '무삭제 내면 일기'

융은 이 책과 다른 저작물에서도 극동에 대한 선망을 자주 표현했다. 노자 도덕경, 주역, 태을금화종지 (The Secret of Golden Flower) 등을 접하며 융은 서양 중심적인 과학주의를 극복해간다. 융 사후 51년이 지나 극동인 한국에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 책이 일반인에게 번역된 것도 뜻이 있는 사건이 아닌가 싶다.(Selbst:Self를 '자아:ego'로 번역하는 등 결정적 오류가 있긴 하지만, 문장이 매끄러워 학자들 번역보다 쉽게 읽힌다.)

다만 지금의 극동이 융이 선망했던 그 극동이 더 이상 아니란 사실이 참 슬프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융은 일반대중도 마음의 선과 악, 신성과 악마성, 페르소나와 그림자 등 대극(對極)이 통합되어 참 자기를 찾는 경험을 하기를 기원했다. 어쩌면 지금 이 땅은 융 생전의 유럽보다 그와 같은 대극의 통합이 더 간절히 요구되고 있는 건 아닐까.

◆ 칼 구스타프 융(Jung·1875~1961)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개척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로 부친과 갈등을 빚었고 특이한 꿈과 환상을 체험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프로이트(1856~1939)와의 만남과 결별은 유명하다. 1907년 첫 만남에서 13시간 동안 대화할 정도로 서로에 끌렸던 프로이트와 융은 1909년 미국을 함께 방문했다가 '갈등'을 경험하고, 결국 1913년 공식적으로 결별했다.

당시 융은 “프로이트처럼 어린 시절의 성적 외상(트라우마)에 유일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또 프로이트처럼 성을 과도하게 전면에 부각시키지도, 성이 심리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이후 융은 영지주의와 연금술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인도,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에까지 관심의 범위를 넓혔다.

프로이트가 ‘개인무의식’ 규명에 몰두했다면 융은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집단무의식’ 개념을 제시했다. 단어 연상 검사를 처음 시도했고, 이를 통해 정신분석학적 ‘콤플렉스’ 학설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의 지인은 그를 두고 “그 자신이 걸어 다니는 정신병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병원의 최고 의사”라고 했다. ‘변환의 상징’(1912) ‘성격 유형론’(1921) ‘원형과 집단무의식’(1934) ‘심리학과 연금술’(1944) 등 저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