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5월 25일 아침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소호. 여섯 살 소년 이튼 패츠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패츠가 처음으로 혼자서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패츠가 홀로서기엔 아직 너무 위험했을까. 패츠는 집에서 두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스쿨버스 정류소까지도 가지 못했다. 한밤중도 아니고 슬럼가도 아닌 곳에서 아이가 실종된 것이다.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뉴욕경찰(NYPD)은 물론 연방수사국(FBI)까지 수사에 나섰지만 좀처럼 단서는 잡히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패츠 실종일인 5월 25일을 '전국 실종 어린이의 날(National missing children's day)'로 지정했다. 우유팩에까지 패츠의 얼굴이 인쇄됐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린이 실종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로부터 33년 뒤인 지난달 19일(현지시각) 뉴욕경찰과 FBI 요원 30여명이 패츠가 살던 집 근처의 건물 지하실에 들이닥쳤다. 패츠의 유해나 옷가지가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영원히 묻히는 줄 알았던 이 사건이 다시 주목받게 된 건 맨해튼 검찰청의 사이러스 밴스 검사 때문이다. 그는 2010년 이 지역에 부임해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밴스 검사는 당시 수사보고서를 살펴보던 중 패츠 집 근처 건물 지하 작업장에서 목수 일을 하던 오스닐 밀러라는 중년 남성이 패츠와 친하게 지냈었다는 '기록'에 주목했다.
밴스 검사는 밀러의 작업장이 있던 건물에 FBI 시체 탐지견을 데려갔다. 탐지견은 반응을 보였다. 사법당국은 이날부터 밀러를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고 지하실 콘크리트 바닥 굴착 공사를 통해 소년의 유해를 찾는 작업에 들어갔다.
33년 만에 수사가 재개됐지만, FBI는 사건의 실마리가 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시민 제보가 들어왔고, 경찰은 패츠 집 인근에 살았던 페르도 에르난데스(51)를 추궁한 끝에 그의 자백을 받아 냈다.
에르난데스는 3시간 가량의 경찰 심문 과정에서 "당시 가게에 음료수를 사 먹으러 가던 패츠를 지하실로 유인해 목 졸라 살해하고 시체는 비닐 팩에 나눠담아 버렸다"고 울면서 자백했다. 그는 자백 후 현장 검증에도 응했다.
에르난데스는 패츠 살해 직후 인근 뉴저지주로 이사 가서 33년간 딸을 하나 둔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았다. 에르난데스가 범인이었다는 보도가 나가자 인근 주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에르난데스는 사건 후 가족과 친한 지인들에게 "자기가 뉴욕에서 나쁜 일을 저질렀으며 아이를 죽였다"고 말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구체적 범행 동기는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입력 2012.05.25. 18:36업데이트 2012.05.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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