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인 '브루셀라(Brucella)증'이 야생 생태계에까지 크게 번져 등산객이나 야생동물 서식지 인근 주민 등이 감염될 위험이 커졌다. 브루셀라균은 신경계와 호흡·순환기계 등 체내 대부분의 장기(臟器)를 공격해 간염, 뇌수막염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브루셀라는 축산농가에서 기르는 소에서 주로 발생해왔으나 국내 야생동물까지 전염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17일 본지가 입수한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의 '야생동물 브루셀라증 감염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8~2010년 강원도·충청도의 포유류 야생동물들을 상대로 브루셀라증 감염 여부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177마리 중 33마리(19%)에게서 '항체 양성 반응'이 나왔다. 특히 주민과 접촉하기 쉬운 유기견(遺棄犬)은 조사대상 46마리 중 16마리(35%)가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국내에 1000여 마리 생존한 1급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경우 조사대상 27마리 중 9마리(33%)가 감염됐으며, 고라니, 너구리 등도 브루셀라에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용역을 수행한 강원대 한태욱 교수(수의학)는 "(국내 야생동물이 브루셀라증에 대거 감염된) 이 같은 실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조사와 별도로,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2009~2011년까지 수행한 야생동물 브루셀라증 실태조사에서도 '조사대상 175마리 중 47마리(27%)가 감염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최근 세계적으로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이번에 야생동물 브루셀라증 감염 실태조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야생동물 브루셀라증이 처음 확인되면서 사람과 소에 대한 감염 위험성이 더욱 높아졌다. 사람 브루셀라증은 2002년 첫 환자가 나온 이후 작년까지 670명이 발생했다. 치사율은 2~5% 이하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브루셀라증에 걸린 젖소 두마리를 키우던 국내 50대 남성이 간·폐·흉막 등에 브루셀라균이 침투해 고열 등 감기 증상을 앓다 입원 보름여 만에 숨진 사례도 있다. 이창섭 전북대 의대 교수는 “터키·스페인 등 브루셀라증이 많이 발생하는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도 사람 사망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브루셀라증 전문가인 백병걸 박사(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전 소장)는 “브루셀라균은 감염 동물이나 우유를 섭취할 때는 물론 입·코 등 점막과 결막·피부 등을 통해서도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면서 “야생동물과의 접촉을 되도록 피하고 축산농가 주변에 야생동물 침입을 막기 위한 울타리 설치 의무화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기견은 물론, 농가에서 풀어 기르는 개의 경우에도 브루셀라균을 보유한 쥐 등 야생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백 박사는 전했다.

소 브루셀라증은 1955년 국내 처음 발생한 뒤 최근 10년간 연평균 8700마리의 소가 살(殺)처분돼 매몰됐다. 야생 생태계 피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브루셀라균은 동물의 생식기 계통을 주로 공격해 유산·불임 등의 증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번식 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한태욱 교수는 “(특히 이번에 높은 감염 비율을 보인) 1급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경우 가뜩이나 우려되는 멸종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브루셀라(Brucella)증

사람의 경우 말라리아·결핵·광견병 등과 같은 3종 법정전염병에 속한다. 가축에겐 소해면상뇌증(BSE·일명 광우병)·탄저병 등이 속한 2종 법정전염병이다. 사람에게는 신경계, 순환기계, 위장, 간 등 각종 장기(臟器)를 공격해 관절통, 우울증, 발열, 두통, 안구통증, 뇌수막염, 뇌염, 간염 같은 질병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