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는 입시에서 논술시험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수험생의 이해를 돕고자 매년 5월부터 7월 사이에 두 차례 모의논술을 실시하고 문제 해설과 모의 답안, 채점 기준을 상세히 밝히는 것부터가 그렇다. 최근 대부분의 대학이 서너 개 문제를 출제해 각 300자에서 600자가량의 답안을 쓰게 하는 것과 달리 한양대(인문계열)는 하나의 문제를 내고 1400자의 '통글 답안'을 요구한다. 2013학년도 논술시험 역시 지난해와 유사한 형태로 출제될 전망이다. 정재찬 국어교육과 교수는 "한양대 논술은 큰 기복 없이 안정적으로 출제되는 게 특징"이라며 "출제자에 따라 문제 수준이나 성향이 좌우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시문은 비교적 평이… '실생활 연계형' 창의성 평가
한양대 논술시험 출제진이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수험생, 즉 우리나라 고 3 학생의 평균적 학업 수준이다. 정 교수는 "현행 고교 교육과정을 잘 아는 출제위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언어영역 지문 수준을 넘지 않도록' 출제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제 출제 전 고교 교과서, EBS 교재, 수능 모의고사 수준 등을 두루 참고해 알맞은 수준의 제시문을 고르는 건 그 때문이다.
한양대 논술시험의 주요 평가 요소는 창의성·논리성·실용성 등 세 가지다. 특정 분야 지식의 양이나 정확도보다 제시문 내용을 얼마나 실생활과 잘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느냐를 주로 본다. 이를테면 지난해 시험 제시문에선 '프레임 이론'과 실제 우리나라 고교 교실에 걸린 세 가지 급훈이 나왔다. 정 교수는 "당시 평가에서도 프레임 이론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했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주진 않았다"며 "평가의 핵심은 프레임 이론을 토대로 한 급훈 분석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차 모의논술에선 '인구가 늘면 탄소 배출량이 많아져 지구의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내용의 지문과 출산 억제·장려 정책을 담은 포스터 두 장이 제시됐어요. 대부분의 수험생은 '인구'란 주제가 나오면 맬서스의 '인구론'을 토대로 답안을 작성하는데, 그것만으론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자신만의 창의적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봐야죠. 이를테면 출산 억제 포스터엔 '지구' 그림이, 출산 장려 포스터엔 '우리나라' 그림이 그려진 것을 토대로 '출산율 저하로 노동력이 점점 부족해지는 국내 문제와 인구가 늘어 환경 오염이 심각해진 세계 문제'를 동시에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한양대 논술시험 지문은 시사 이슈에 편중돼 있지 않다. 다만 답안 내용을 통해 해당 이슈에 대한 수험생의 관심 여부를 가늠할 순 있다. 예컨대 지난해 2회 모의논술에선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제시문으로 등장시킨 후 '우리나라에 필요한 지도자상(像)을 서술하라'는 논제 아래 '청소년 지도 문제를 예로 들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때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왕따 문제'를 예로 들어 답안을 작성하면 시사 이슈에 대한 관심과 현실 적용 능력을 두루 보여줄 수 있다.
◇논제의 요건 모두 충족한 답안이라야 '고득점'
정 교수는 좋은 답안의 첫 번째 조건으로 '논제의 조건을 모두 충족한 답안'을 꼽았다. 그는 "논제가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고 투덜대지 마라"며 "논제는 답안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로드맵과 같다"고 강조했다. 논제가 요구하는 순서를 참고하면 1400자의 긴 답안도 얼마든지 단락을 나눠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술에선 사고력과 표현력을 모두 평가하지만 그 중에서도 사고력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글은 잘 썼는데 논리가 빈약한 답안보다는 표현이 다소 매끄럽지 못해도 분석적·종합적 사고로 자신의 논리를 펼친 답안이 좋은 평가를 받아요. 분량을 맞추지 못한 답안, 제시문을 그대로 옮긴 수준의 답안, 논리 없이 수필처럼 쓴 답안은 예외 없이 나쁜 점수를 받습니다."
정 교수는 한양대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선생님이 됐다고 생각해 남에게 설명하듯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알고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글 솜씨도 좋아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수능·내신·논술을 따로 공부하려고 하지 마세요. 단적인 예로 수능 언어영역 제시문과 교과서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이 담겨 있어요. 글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내용만 흡수하는 게 아니에요. 그 형식과 논리 전개 방식까지 배우는 과정이죠. 언어영역을 공부할 땐 문제 풀이에만 골몰하지 말고 제시문을 읽으며 '여기서 의문문을 쓰니까 주제가 더 선명하게 각인되는구나'처럼 글 쓴 방식까지 눈여겨보세요. 무엇보다 꾸준히 글을 써보며 '좋은 글의 구성'을 익혀나가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