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거리는 물인 줄 알고 발을 담가볼까 했더니, 까만 유리였다. 내달 3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 'Scape Drawing'을 여는 김태호(59·서울여대 교수)는 미술관 3층 전시장 바닥에 검정 유리를 깔고, 군데군데 데크(deck)를 설치했다. 관객의 얼굴, 주변 사물을 그대로 비추는 유리 바닥이 연못 같은 착시효과를 주는 이 전시장 벽엔 다양한 크기의 은은한 연두색과 핑크색 캔버스 15점이 설치됐다. 캔버스 표면은 그저 단색. 어떤 형태도 그려져 있지 않지만 김태호는 "이 캔버스에는 무수한 풍경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나무, 집, 바람…. 주변의 수많은 사물을 그렸다. 그린 위에 겹쳐 그리기를 수천 번을 반복했다."
그림은 세계를 품고 있음에도 '무(無)'가 됐다.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이 '없음'의 풍경을 바라보며 세상만사를 다 잊기를 바란다는 것이 작가의 소망. 미술관 옆 학고재 갤러리에서는 내달 10일까지 김태호의 드로잉·회화 작품 20여점이 전시된다. (02) 720-5114, (02)745-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