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나영 기자] 영화 '코리아'(문현성 감독)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배우 한예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결성됐던 남북 단일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코리아'에서 한예리는 첫 국제대회 출전에 나선 북한의 국가대표 유순복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배두나는 한예리를 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너무 맑고 청초하고 예쁘게 생긴 애가 있는 거에요. 그 때는 예리가 앞머리 없는 긴 생머리였어요. 제가 아오이 유우랑 같이 작업한 적이 있는데, 저도 모르게 예리에게 이랬어요. '너 아오이 유우 닮았어'. 선이 얇고 얼굴은 작고, 분위기가 아오이 유우랑 비슷한 느낌이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순복이처럼 싹둑 바가지 머리를 자르고 왔죠. 정말 순둥이 순복이가 됐더라고요."

실제로 다수의 독립 영화 경험이 있는 한예리는 '독립 영화계의 아오이 유우', '독립 영화계의 전도연'이라 불리는 배우다. 이 얘기를 꺼내자 한예리는 "민망하다"라며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숙여보였다.

MBC '로드 넘버원'에서 북한 간호사로 나온 한예리를 보고 감독이 직접 캐스팅한 한예리. 극장에서 상영되는 상업 장편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너무 큰 역할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얼떨떨해요. 제가 아직 너무 신인인데, 처음부터 너무 큰 역할을 맡는 게 아닌가 걱정이 많았죠"라는 한예리는 '코리아'의 순복이가 그의 연기 인생에 또 다른 시작임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영화 속 '한예리=순복이'는 100%를 자랑한다. 한예리가 그간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순복이의 말투, 행동, 표정, 눈빛 하나하나가 관객들에게 진정성있게 다가온다. 실제로도 "정말 북한사람처럼 보인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당시 단일팀에서 류순복 선수와 친했던 사람이 "정말 순복이랑 비슷하다"라고 말했단다. 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류순복 선수는 제일 친절했고, 당시 어려서 그런지 사람들을 살갑게 잘 대하는 성격이었다고.

"제가 연기하는 류순복과 실제 류순복 선수랑 비슷하다는 생각 들었어요. 실제로 뵙고 싶죠. 먼 곳에 계신 것도 아닌데.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그 분이 실제로 계시다고 생각하니 든든했어요.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여배우로서 스크린에서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을 터. 하지만 찰랑이는 긴 머리를 싹둑 잘라낸 순간부터 그에게는 아름다운 외모보다는 순복이가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처음에는 짧은 머리에 핑클 파마를 했는데 무지 촌스러웠어요(웃음). 당시 실제로 북한 선수들이 세련돼 보이려고 핑클 파마를 하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그 파마를 하나 머리들이 부스스하게 다 위로 올라가요. 아예 신경 접고, '탁구만 열심히 하면 되겠다'란 생각을 했죠."

함께 북한선수로 호흡을 맞춘 배두나는 그를 "연습벌레"라고 불렀다. 극중 순복이는 기본기가 상당하지만, 실제 경기에서도 그 실력을 100%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못치는 모습도 보여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탁구를 잘 못치는 모습이여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잘 쳐야 못 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를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탁구 연습을 게을리 할 수가 없었어요. 다른 분들께 정말 누가 안됐으면 좋겠다, 칭찬을 받으면 더 좋고, 이런 마음 뿐이었죠. 나중에 류순복 선수가 영화를 본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게 하자, 스스로 이렇게 다짐했죠. 그러니까 지치지 말자고."

이번 작품에서 '두 언니' 배두나와 하지원과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 그는 스스로를 '행운다'라고 불렀다. 영화 속에서 순복이는 이들과 각기 다른 관계를 갖는다.

"두나 언니는 북한의 주장으로서 기둥이고 울타리가 됐죠. 류순복은 당시 그런 큰 경기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뭘 해야되는지도 몰랐고, 그것을 리분희 언니가 다 안아주려고 했어요. 그런게 실생활에서도 이런 관계가 반영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두나 언니가 정말 그렇게 해주셨어요. 언니와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고. 지원 언니는 정말 배울 게 많은 멋진 분이에요. 리분희랑 있을 때 순복이는 얘기하는 편이었다면, 지원언니랑 연기할 때는 류순복이 귀를 여는 입장이 됐죠."

요즘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한예리도 그에 속한다. 단, 한예리는 연극원이나 영상원 출신이 아닌, 무용 전공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요즘 KBS 2TV '넝굴당'(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나오시는 이희준 씨랑 독립 장편영화에서 같이 연기한 적도 있고, 영화 '파주'를 찍을 때는 이선균 씨가 제가 학교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정말 예뻐해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연극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래도 되는건가?'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전공을 한 그 분들은 학습적으로 기본기를 다졌기 때문에 저랑은 비교도 안 될텐데 말이죠. 무용과 전공이라 연기는 현장에서만 했어요. 그 분들께 누가 되고 그 대열(한예종 대열)에 껴도 되나, 란 생각이 솔직히 들어요. 그러면서 스스로 연기 공부를 학습적으로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도 들고요."

한예리가 배우가 된 과정은 정말 우연이었다. 재학 당시, 영상원에서 무용과에 안무를 해달라고 의뢰가 들어왔고, 배우 트레이닝을 해 준 적이 있다. 그러다가 영상원 졸업작품에서 한예리에게 배우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 영화가 '기린과 아프리카'다. 2007년에 찍은 이 영화는 다음 해인 2008년 미장센 영화제에 출품됐고, 한예리는 이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게 된다.

무용에 목숨을 걸던 한예리의 인생은 이때부터 달라졌다. 우연치 않게 찍은 영화 이후 계속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그가 먼저 오디션을 찾은 영화는 여지껏 단 한 작품도 없다. 더욱이 무대 위에서 큰 존재감을 발산해야 해는 무용은 뚜렷한 얼굴에 큰 키를 선호해 "이목구비가 크지 않다", "키가 작아서 어째" 등의 말을 들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한예리의 얇은 선과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훨씬 장점으로 작용하게 됐다. 한 쪽에서 콤플렉스였던 것이 다른 쪽에서 강점으로 바뀌어 그의 인생이 더 재미있어졌다.

"그냥 '경험하자'란 생각으로 찍은 영화였죠. 연기를 끝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한 작품 한 작품 하다보니 재미있구나란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무용할 때는 춤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고, 정작 나를 돌아볼 시간은 없었어요. 춤 출 때는 치열하게 하고 춤으로만 평가를 받거든요.하지만 연기를 하게 되면서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게 됐죠.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춤이 더 좋아졌어요. 연기를 하고 나를 돌아보니 춤을 더 즐겁게 출 수가 있더라고요."

말그대로 '투 잡'이다. 연기도 무용도 병행할 것이라는 한예리의 눈이 순복이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영화를 찍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들이 정말 신기해요. 아직도 잘 맏기지가 않네요. 또 제가 한 것에 비해 많은 것을 칭찬받고 있구나, 란 생각이 들어서 더 긴장하게 되고요. 아무래도 신선해서 더 후하게 봐주신 것 같은데, 다음 영화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뭘 더 잘해야 할지..우선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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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