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저성장과 막대한 부채 두 가지 상반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세금을 인하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공공지출은 줄이는 등 '성장과 긴축' 두 가지 카드를 모두 가져가야 합니다."

이탈리아 최고 명문대 중 하나로 꼽히는 로마 루이스대학의 니콜라 보리 경제학과 교수는 조선비즈 창간 2주년을 기념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탈리아는 최근 유럽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성장과 긴축 가운데 한 가지도 포기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 이탈리아는 정부의 긴축 조치들로 국민들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보리 교수는 "마리오 몬티 정부는 세금을 인상하고, 연금 소득을 낮추는 방식으로 재정적자를 줄이고 있는데, 여기에 국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며 "정부가 올해 말까지 추가로 50억유로(약 7조4000억원)의 공공지출 삭감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불안감으로 몰아넣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에 대해서는 10여년 전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이 만들어진 원죄(原罪)가 부메랑처럼 돌아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각 국가가 생산성이 다른데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놓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국가들의 부채가 누적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찾지 못할 경우 유로존과 유로화는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현재까지 몬티 정부는 대체로 세금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재정적자를 줄여 왔다. 연금 소득도 낮추고 있다. 여기에 국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 이탈리아에서 현재 강도 높은 긴축 조치들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지 국민들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정부는 추가로 올해 말까지 50억유로(약 7조4000억원)의 비생산적인 공공 지출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어디에서 비용을 줄일 것인지 분명하게 발표한 상황이 아닌데도 국민들은 추가로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발표에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대신 정치인들이나 정당으로 가는 돈을 감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 이탈리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2% 수준으로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긴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는 건가. 긴축과 성장 중에 지금 이탈리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이탈리아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막대한 세금, 낮은 수준의 교육, 복잡한 입법과정 같은 문제에 따른 저성장이다. 또 하나는 막대한 부채다. 부분적으로 이 두 문제는 연결돼 있다. 근로·법인소득에 대한 세금을 줄이는 동시에 비효율적인 공공비용 지출을 줄일 필요가 있다. 두 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다."

- 그리스가 3차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가 2차 구제금융만으로 충분히 문제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2~3년 뒤쯤 그리스는 부분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맞을 것이고, 유럽 국가들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다시 한 번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유럽 재정위기국으로 계속 거론되고 있다. 재정 건전성이나 경제 성장률을 고려할 때, 이 국가들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포르투갈이 그리스의 전철을 밟아 재정 지원(부분적인 디폴트+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이 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스페인의 경우 현재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다. 두 국가 모두 현재 같은 실업률 상태로는 여론이나 재정(조세수입이 결국 바닥날 것)면에서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정부가 구조 개혁면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것들이 효력을 내기를 기대한다."

-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시중에 공급한 돈들을 거둬들여야 하는 시점이 언제라고 보나.

"중앙은행들이 뿌린 돈은 대체로 시중은행들이 각 계좌에 현금을 보유하고 있기 위해 끌어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시중은행들의 자본 건전성에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제 생활 경제에 이 돈이 투입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고, 유럽이나 미국의 경기도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 당분간 이런 식의 유동성 공급이 필요하다. 다만, 이런 돈 풀기가 오래 진행돼서는 안 될 것이다. 유동성 공급과 동시에 출구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 일부 경제학자들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단일 유로통화 제도가 붕괴하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유로존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재정위기를 계기로) 일부 결함이 드러나고 있다.
유로존의 주된 문제는 유로존 회원국 사이의 생산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지난 10년간 노동 생산성이 많이 증가했다. 반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노동 생산성이 10년 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생산성 차이는 유로존에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주변국들에는 부채 누적으로 이어지고, 독일 같은 국가들에는 자산 축적의 결과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과거에는 이런 문제들이 통화가치 하락을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 이제는 이게 불가능해졌고, 그 결과 생산성이 낮은 국가들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무엇보다 유로존 국가들은 원죄(原罪)로 고통받고 있다. 단일통화제도(유로화) 속에서는 대출도 최후의 수단(ECB·유럽중앙은행) 없이는 각 개별 국이 통제할 수 없다. 유럽 주요국 지도자들은 이런 문제들은 인식하기 시작했고, 해결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런 노력들이 성공한다면 유로화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로화가 붕괴할 것이다. 유로존 및 유로화 붕괴 시나리오를 가장 가능성 있다고 보고 있다."

- 최근 미국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나오고 있는 경제지표를 볼 때, 미국의 경기 전망이 밝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

"그렇다. 미국으로부터 좋은 신호가 나오고 있다. 다만, 미국은 여전히 주 정부 차원에서의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세금을 올려야 할 텐데, 이것은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대선과 이후 나올 각종 경제개혁을 기다려봐야 한다."

- 유럽 재정위기 이후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같은 신흥국들이 세계 경제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이 선진국을 주도하기 위해 어떤 잠재력이 있다고 보나.

"브릭스 국가들은 이미 세계 경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들이 선진국들을 주도할 만큼 파워가 생길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같은 선진국들은 아직도 엄청난 부자국가들이고 기술적으로 발전해 있다."

- 국가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시점을 찾을 수 있다는 연구를 했었다. 당시 연구가 지금 유럽 재정위기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요약하자면 부채 문제를 갖고 있는 국가들의 디폴트 시점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상황이 어려운 것이 불씨가 된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외국이 투자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국채금리가 급등(국채금리 하락), 해당 국가의 어려움이 증폭됐다. 유럽 국가들이 당장에 디폴트 가능성이 크지 않은데도 국채금리가 급등했던 비경을 이해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우가 그랬다."

◆ 니콜라 보리 교수는

지난 2009년부터 이탈리아 루이스대학에서 경제학 강의를 시작했다. 공동 연구논문인 '유럽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2010년 국제리스크관리 콘퍼런스에서 최고 연구논문상을 받았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가 총재로 재직했던 밀라노 소재 보코니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수료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2009년 보스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