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학의 링컨' '미국 현대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1835~1910)의 본명은 새뮤얼 렝혼 클레멘스다. 마크 트웨인은 1863년부터 그가 사용한 필명인데 수로안내인의 용어로 '깊이 두 길', 즉 배가 다닐 수 있는 안전 수역을 지칭한다. 이처럼 그는 제 터전인 미시시피 강 유역에 깊은 애정을 가진 작가였다. 그 사랑이 무려 팔 년이나 벼려진 끝에 1884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걸작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위대한 고전으로 상찬해야 할 이유는 많다. 살짝 화려하게 비유하자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과 '로드 짐'의 섬세함을 지닌 주인공이 '닐스의 모험'이보여주는 지리학적 편력과 '보물섬'스케일에 버금가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벌이는데 그 안에는 '걸리버 여행기'의 예리한 풍자와 '돈키호테'의 포복절도할 엉뚱함이 곁들여져 있다고나 할까.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만병통치약을 광고하는 약장수라도 된 기분이지만, 사실 전혀 근거 없는 허풍이 아니다. 오죽하면 노벨상 수상작가인 헤밍웨이가 이 책을 현대 미국문학의 기원으로 평가했겠는가. 저명한 동료 문인에 의해 그런 수준의 극찬을 받은 현대작가는 내가 알기론 두 명뿐인데, 다른 한 명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했을 때의 바로 그 고골리다. 폭을 살짝 넓혀 추리소설의 개척자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나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보르헤스 등을 모두 합친다 해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어릴 적, 없는 살림에도 내 아버지는 집 근처의 작은 문방구 겸 서점에 일종의 외상장부를 만들어주셨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언제든 사서 읽으라는 호의였는데, 그 절절한 부성(父性)을 배반하고 가게 주인과 공모해 책을 산 것처럼 장부에 허위기재한 다음 뚜껑에 자석이 달린 삼단 필통이나 알록달록한 휴대용 선풍기 따위를 들고 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당시 산 책 중 하나다.
확실히 삼단 필통보다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등장인물이 쉴 새 없이 토해내는 뚱딴지 같은 유머에 깊이 빠져들었다. 심지어는 동화나 텔레비전의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마저도 애답지 않은 조숙함이 강요되던 판국이라, 이 책에 담긴 걸쭉한 입담과 해진 청바지를 닮은 경거망동은 어딘가 통쾌하고 후련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런 유머는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슬랩스틱이 아니다. 불량청소년의 세련되지 못한 허세나 도망자의 궁여지책, 사기꾼들의 막장에 다다른 탐욕이 정말로 보여주는 것은 그 반사회적 해프닝 속에 담긴 약자들의 눈물, 콧물이다. 훗날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았고, 그러자 더 이상은 예전처럼 왁자지껄 신나는 모험소설로만 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그보다 훨씬 신랄하며 진중한 세계를 담고 있다. 이는 특히 주인공이 지닌 입체적 성격을 통해 드러난다.
허크(허클베리 핀)는 문명에서 탈출하는 게 직업인 악동이지만 옳고 그름을 느끼는 일에는 그 어떤 어른보다도 정직하다. 이리저리 눈 돌리지 않고 핵심만을 붙잡아 양심의 법정에 부려놓는다. 이를테면 미시시피 강 연안을 따라 펼쳐지는 기나긴 모험의 와중에 허크는 중대한 도덕적 딜레마와 마주친다. 탈출한 흑인 노예인 짐을 도와주느냐, 아니면 인간을 장물 취급하는 실정법에 따라 고발하느냐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한쪽은 십대 부랑자인 저 혼자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고, 반대쪽은 당대의 법률과 관습과 신사숙녀들이 이구동성으로 옳다고 가리키는 방향이다. 그 지극히 대립적인 두 갈래 사이에서는 타협도 방관도 허용되지 않는다. 어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고, 일단 선택한 다음에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대통령인 링컨도 흑인을 해방하는 일을 그토록 힘겨워했는데, 믿고 의지할 이 하나 없는 열네살짜리 가출청소년에게 그것은 도대체 얼마나 버거운 짐이었을까.
하지만 허크는 딜레마와 맞닥뜨린 그 순간부터 제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설령 그럼으로써 범법자로 전락하며 고상한 어른들로부터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비난을 듣게 될지라도 말이다. 살 떨리는 고민 끝에 결심한다. "좋아, 그렇다면 난 지옥에 가겠어." 바로 이 한 문장으로 인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국을 넘어 세계의 문학이 되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140자 트윗독후감]
"(강이름 A)에서 뗏목을 타고 펼치는 허클베리 핀과 흑인 노예(사람이름 B)의 모험담.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한 동화로 보는 것은 작가 마크 트웨인에 대한 실례다. 그 안에는 위선적 교양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진정한 (C)에 대한 유머 넘치는 깨알음이 있다." 정답은 A=미시시피강, B=짐, C=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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