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초·중·고교에선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 징계를 논의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폭자위)'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고, 폭자위 개최를 미루는가 하면, 학교폭력을 은폐하기 위해 학교가 폭자위 회의록을 위조하는 사례도 있다.
A고등학교 2학년 이대준(17·가명)군은 지난 3월 29일 일진에게 폭행을 당했다. 일주일 뒤 교내 폭자위가 열렸고, 가해학생은 출석 정지조치와 전학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4월 17일 학교 측이 "절차상 문제가 있어 지난번 결정은 무효이며, 27일 폭자위를 다시 연다"고 했다. 하지만 27일 열린 폭자위에서는 이 사건을 심의하지 않았다. 사흘 뒤 학교 측은 부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5월 11일 폭자위가 열린다. 부모는 오지 말고 대준이만 보내라"고 통보했다.
이군의 아버지 이재삼(가명)씨는 "대준이가 가해학생과 마주치는 게 두려워 학교에 못 가는 걸 뻔히 알면서 보호자 없이 아이만 보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학교 폭자위만 믿고 있다간 아들 마음의 상처만 더 깊어질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서울의 B중학교는 성추행 및 폭행 사건으로 열린 폭자위에 가해학생 중 일부만 불러 사건을 축소하고, 회의록에 경찰 발언과 서명을 위조한 사실이 적발돼 교육청의 감사를 받았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이재호 본부장은 "어떤 학교에서는 가해학생의 학부모가 폭자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면서 "폭자위를 열지도 않고 허위로 회의록을 꾸며 피해학생에게 거짓 통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C중학교 3학년 서준영(15·가명)군의 부모는 지난 3월 아들이 일진에 돈과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구타를 당했다며 학교 측에 폭자위 개최를 요구했다. 하지만 폭자위는 '금품 갈취'만을 안건으로 올렸다. 학교 측은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는 성적이 좋고 예의가 바른 모범생이라 서군을 괴롭혔을 리 없다"는 이유를 댔다. 결국 일진은 '교내 봉사 3일'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서군 부모는 "일진들이 준영이를 더 심하게 괴롭혀 폭자위가 열린 후로는 아예 등교조차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윤희숙(가명)씨는 3년 전 아들 강두현(가명·15)군의 집단 따돌림 문제로 열린 폭자위에서 눈물을 쏟았다. 윤씨가 아들의 피해 상황에 대해 설명하자 교감이 "쓸데없이 말이 많다. 1분만 말하라. 땡. 끝났다"며 면박을 줬다는 것이다. 결국 폭자위는 강군을 괴롭힌 학생들에게 아무런 처분도 내리지 않은 채 끝났고, 강군은 그때의 충격으로 지금까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윤씨는 "고통스러워하는 피해학생의 부모에게 교감이 위로는 못할망정 호통을 치더라"며 "가해학생 부모 앞에서 피해학생 부모인 내가 도리어 죄인이 된 것 같았다"고 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모든 초·중·고교에 설치된 심의기구.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징계하며, 피해·가해 학생 간 분쟁을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5~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학교장이 교감·학부모 대표·교사·법조인·관할지역 경찰 등을 위원으로 임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