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꼭 잡은 30대 부부가 영화 상영관에 들어섰다.

"우리 영화관 진짜 오랜만에 오는 거지? 3년은 된 거 같아."

남편 조현욱(38)씨를 이끄는 강내영(33)씨가 조잘조잘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지난 17일 오후 7시쯤 CGV 서울 왕십리점. 무뚝뚝한 표정의 조씨도 아내가 건네주는 팝콘 하나를 받아먹더니 '씩' 웃음을 짓는다.

이들 부부가 여느 부부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각장애 1급으로 둘 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것. 시각장애인들에게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매표소를 찾은 뒤엔 직원에게 "가장 앞줄로 주세요"라는 말을 제일 먼저 꺼낸다. 앞줄이 아니면 좌석 번호가 보이지 않아 자리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오후 CGV 서울 왕십리점 상영관에서 강내영(왼쪽)·조현욱씨 부부가 ‘한글자막·화면해설 영화’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날은 둘이 즐겁게 영화관 데이트에 나섰다. 이 영화관에서는 장애인의 날(20일)을 맞아 '한글자막·화면해설 영화'를 상영했기 때문이다. 이날 이 부부와 같이 영화를 본 150여명도 모두 시·청각 장애인이었다.

최신 한국영화 '시체가 돌아왔다'가 상영되는 동안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과 더빙 된 음성해설이 쏟아졌다. "지금 시위하는 사람이 밀가루를 던졌다" 등과 같이 해설 음성이 나오는 식이다. 이 행사는 같은 시각 전국 11개 CGV 극장에서 동시에 진행돼 총 1600여명의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청각 장애인들은 앞으로 최신 한국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길이 늘었다며 신이 난 표정이었다. 지역 복지관 등에서 간간이 하던 영화 관람 행사뿐 아니라 CJ CGV도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화요일, 전국 11개 CGV 극장에서 시청각 장애인 영화를 상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17일 행사는 첫날이라 한국농아인협회와 한국시각장애인협회가 단체로 티켓을 끊어줬지만, 앞으로는 장애인들이 9000원짜리 일반 영화를 5000원이란 할인 가격에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