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식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뭔가 복잡하다. 복잡하게 얽힌 동선(動線) 때문에 접시를 든 사람들끼리 부딪히기 일쑤다. 한식·중식·이탈리아식 등 각양각색 음식이 어우러져 있다 보니 시각적으로도 어수선하다. 자연스레 실내 디자인은 잡탕이기 마련. 그래서 일식당이나 양식당 등 단일 음식점이 디자인상을 받은 적은 많지만 뷔페식당이 디자인으로 화제가 된 적은 드물다.
최근 한국 디자이너가 국내에 디자인한 뷔페 레스토랑이 독일의 세계적 예술서적 출판사 '테노이에스(teNeues)'에서 디자인이 훌륭한 세계 레스토랑 50곳을 선정해 엮은 책 '세계의 쿨한 레스토랑(Cool Restaurants Top of the World)'에 포함됐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치호(44·치호앤파트너스 대표)씨가 지난해 작업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뷔페 레스토랑 '나무스'다. 지난해 한국공간디자인 대상과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 골든스케일어워드, 건축전문지 에이앤뉴스 선정 '올해를 빛낸 건축 디자인상' 대상을 받은 화제작이다.
"시장통 같은 느낌을 없애고 싶었어요. 뷔페식당도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선택과 집중'에 충실했지요." 최근 이 레스토랑에서 만난 김 대표는 뷔페 레스토랑의 '잡탕 디자인'에 대한 도전을 이렇게 요약했다. 이탈리아 유학파인 김 대표는 최근 상업공간과 주거공간을 넘나들며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젊은 실력파 디자이너. 현대백화점 본점·목동점·신촌점 리뉴얼, GS건설 서교 자이 실내 디자인, 일룸 플래그십 스토어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해왔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은색 머리, 잘 정리한 수염…톡톡 튀는 외모가 말해주듯 '지루한 걸 못 참는' 디자이너다. 그런 그가 이번엔 "파격에 대한 충동을 억누를 대로 눌렀다"고 했다. "뷔페식당은 시각적 요소가 이미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장식을 자제하는 게 관건이라 생각했어요. 무대 같은 걸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데 많이 참았죠.(웃음)"
김 대표의 '끼'는 천장 한가운데에 집중됐다. 식당에 들어서면 중심에 폭 약 6m 길이 3m의 거대한 철제 장식이 역피라미드 형태로 매달려 있다. 직육면체 바 형태의 철제 조명 100여 개를 하나씩 천장에 걸어 만든 조형물로 마치 동굴의 종유석처럼 보인다. "퓨처리즘(futurism·미래주의)적인 느낌을 살리면서도 동선을 시각적으로 단순화하기 위해 낸 아이디어랍니다. 중간에 아일랜드 형태로 음식을 공급하는 두 개의 공간을 두고 그 위로 조형물을 설치해 어디에서 보든 홀의 중심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했어요."
'톤 다운(tone down·어둡게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노출된 음식 때문에 알록달록한 내부를 차분하게 하기 위해, 회갈색·월넛색의 나무와 석재로 내벽을 마감해 통일감을 줬다. 조도(照度)도 한껏 낮췄다. '빛'은 동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접 조명을 쓰는 대신, 음식이 놓인 공간의 하부에 간접 조명을 설치해 자연스럽게 동선을 표시하는 지시등 역할을 하게 했다.
현대적인 식당 디자인은 김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된 것이란다. "이탈리아에서 놀러 온 디자이너 친구가 디자인 좋은 레스토랑 없느냐 묻더라고요. 막상 '이거다' 싶은 곳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요즘 일만 해서 잘 몰라' 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부끄럽더라고요."
이런 도전은 서울 이태원의 해밀톤 호텔 별관을 리모델링해 지난 13일 문을 연 상업시설 '이태원 디스트릭트'에서도 이어졌다. 바와 클럽이 들어선 이 공간은 개장하자마자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이태원의 가장 '핫한(뜨는)' 공간으로 떠올랐다. 그는 동양과 서양이 혼재된 공간인 이태원의 이미지를 디자인으로 풀었다. 우리의 근대 건축물에서 보이는 장식을 철제 문창살로 만들어 파티션에 활용하고 상부는 기하학적인 메탈 장식으로 꾸며 도회적인 느낌을 주는 등 곳곳에 퓨전의 요소를 심었다.
김 대표는 "한국에 갔을 때 여기 안 가면 후회한다고 소문날 수 있는 상업공간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