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대각선의 의미를 물었는데 대다수가 그림으로 표현할 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더군요. '마주 보는(對) 각(角)을 이은 선(線)'이라고 한자 그대로 연결만 하면 되는데 말이죠." 이명학(56)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국내에서 한글 전용 정책이 전면적으로 시행된 건 지난 1970년. 42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자(漢字)의 존재감은 한없이 가벼워졌다. 당장 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한자가 배제되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정확한 뜻도 모른 채 한자어를 남발하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는 것. "풍부한 언어생활을 위해서라도 한자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 교수를 지난 9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자 공부, 학교 교육과도 직결돼
"베트남어 '깜언'은 우리말로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사실 깜언의 어원은 한자어 '감은(感恩)'이에요. 하지만 베트남 사람 대부분이 이 사실을 몰라요. 식민지 시절, 그때까지 병기하던 한자를 없애고 로마자 표기만 허용한 후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이죠. 사실 우리말도 약 70%가 한자어입니다. 지금처럼 한자 교육을 등한시하면 우리나라도 베트남처럼 되지 말란 법 없어요."
실제로 이 교수는 "얼마 전 초등학생들에게 '현재(現在)'를 써보라고 했는데 태반이 '현제'라고 적더라"는, 믿기지 않는 얘길 했다. "대강의 뜻만 알 뿐 그 단어에 숨겨진 한자의 의미를 모르는 데서 오는 부작용입니다.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하면 결국 엉뚱한 글쓰기와 말하기로 이어지게 될 거예요."
그에 따르면 한자 공부는 학교 교육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과 단어가 대부분 한자어이므로 그것만 제대로 이해해도 학업 성취율이 절로 높아질 거란 얘기다. "초등학교 시기의 한자 교육은 정확한 우리말·글 구사력 측면에서 특히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 인성 교육 측면에서도 한자 공부는 적지않은 도움이 된다. "처음부터 논어 같은 고전을 읽어내기가 버겁다면 사자소학에 도전해보세요. 옛 선조들이 어린이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기초 교과서 격의 책이죠. 찬찬히 읽다 보면 한자를 익히는 동시에 효(孝)나 충(忠) 등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성품도 배울 수 있습니다."
◇주변 사물 '한자 뜻' 눈여겨보길
그는 "한자 공부의 시발점은 한자어로 된 주변 사물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무기(噴霧器)를 예로 들어볼까요? 한자를 하나씩 뜯어 살펴보면 '뿜을 분(噴), 안개 무(霧), 도구 기(器)'로 돼 있죠. '(물을) 안개처럼 뿜어내는 기구'란 정의가 자연스레 나옵니다. 이런 방식으로 호기심의 폭을 넓혀가면 효과적으로 한자를 익힐 수 있어요."
이명학 교수는 국가 공인 한국한자어능력인증시험의 출제위원이기도 하다. 이 시험엔 한자 교육에 대한 그의 소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기존 한자 시험은 대부분 특정 한자를 지정한 후 그 한자를 활용, 문제를 내는 형태로 출제됩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가 일상생활은커녕 전문 서적에서조차 보기 힘든 어휘로 채워져 있죠. 한국한자어능력인증시험은 교과서 속 단어 위주로 문제가 구성돼 있어 한결 실용적입니다. 예를 들어 △고교 도덕 교과서에 등장하는 문장 '현대 사회에서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은 가상공간이란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가져다줬다'를 제시하고 △'가상'이란 단어에 밑줄을 친 후 △'가상'으로 발음되지만 뜻은 서로 다른 한자어 4개 중 문맥에 어울리는 한자어(假想)를 고르게 하는 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