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일어난 20대 여성 토막 살해사건에서 용의자 오원춘(42)은 경찰에 "A씨를 납치한 후 집 안에 6시간 동안 감금했다가 2일 새벽 5시쯤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의 대응 미숙, 특히 112의 상황 오판으로 6시간 동안 이어진 A씨의 생존 노력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은 8일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112 신고센터 요원이 신고 5분쯤 뒤 신고자의 휴대전화 기지국 확인을 통해 '새마을금고 기지국 158m 지점 지동초교에서 못골놀이터 방향'이라고 2회에 걸쳐 보조 지령을 내렸으나, 팀장이 이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살인마의 앞과 뒤… ‘수원 토막 살인사건’피의자 오원춘이 지난 7일 저녁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유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오원춘의 얼굴.

본지 기자가 확인한 결과, 이 요원이 지목한 범행 추정 장소의 범위에는 범행 장소를 포함해 65가구 정도가 모여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경찰이 A씨 수색을 위해 최종 투입했다고 밝힌 34명이 각자 2가구만 확인했어도 범행을 초기에 차단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본지 취재 결과, A씨는 이 밖에도 납치 과정에서 경찰의 신고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네 번의 생존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녀는 6시간동안 공포에 떨며 마지막까지 경찰 기다렸는데…
피해자 언니가 답답해서 현장 찾아갔더니… 경찰은 자고 있었다

수원 20대 여성 토막 살인사건은 처참한 결말로 끝났으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적어도 피해자 A(28)씨를 살릴 수 있는 4번의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새마을금고 158m 지점"…지령실이 묵살

경찰은 이날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112신고센터 요원이 '새마을금고 기지국 158m 지점 지동초교에서 못골놀이터 방향'으로 추정하고 '지동초교 건너편, 동오아파트 부근 주택가 쪽'이라고 2회에 걸쳐 보조 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보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령을 내렸어야할 직속 상관(팀장)이 이를 무시한 것으로 경찰 감찰에서 밝혀졌다. "지동초교 조금 지난 집(안)"이라는 피해자의 구체적인 신고에 이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 자체 분석 결과까지 묵살한 것이다.

본지 기자가 현장을 확인해 보니, 112센터 요원의 분석은 매우 정확했다. 범행 장소는 새마을금고에서 150여m 떨어진 동오아파트와 지동초교 건너편 사이 주택가에 있었다. 112요원이 범행 현장으로 압축한 이 지역 가구수는 65가구 정도였다. 이 사건에 최종 투입된 34명이 2가구만 수색했어도 범행을 초기에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신고센터 요원의 분석이 묵살되고 "못골놀이터 가기 전 지동초교 쪽"이라는 애매한 지령이 유지되면서, 경찰의 탐문 범위는 최대 3000가구로 확대됐다. 경찰은 "추정 장소가 광범위하다보니 휴대전화 기지국 주변과 범행 장소에서 800m 떨어진 못골놀이터 주변, 지동초교 운동장, 폐가 등 엉뚱한 장소를 헤매고 다녔다"고 말했다.

◇"부부싸움 같은데"…타성적 접수

사건 당시 A씨는 "성폭행당하고 있다", "아저씨 잠깐 나간 사이 문을 잠갔다"며 긴박한 상황을 알렸다. 경찰에 따르면 오원춘의 집으로 끌려간 A씨는 오씨가 잠깐 화장실에 간 틈을 노려 방문을 잠그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신고를 받고 "누가 어떻게 알아요?", "문은 어떻게 하고 들어갔어요?" 등 엉뚱한 질문을 한 112센터 직원은 두 달 전 센터에 배치됐으나 경찰교육원에서 두 주간 받는 기본 교육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신고가 접수되던 긴박한 순간에서 112센터 요원들의 반응도 사건을 어떻게든 축소해 인식하려는 타성이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찰이 공개한 신고 녹취록을 보면, 용의자 오원춘의 폭행으로 A씨가 더이상 통화를 못하게 된 후에도 6분 20초간 A씨의 비명소리가 이어졌고 당시 센터에 근무 중이던 요원 20여명이 이 처절한 상황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장소가 안 나왔다", "아는 사람인데,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 등 "성폭행"이라고 밝힌 피해자 A씨의 처절한 신고 내용까지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흔한 부부싸움"…목격자의 방관

사건 당일 밤 10시 30분쯤 A씨가 오씨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한 한 주민이 있었다. 이 주민은 지인들에게 "A씨가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라고 부르짖는데, 오씨가 그냥 끌고 갔다"면서 "흔한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 여자가 바람을 피우다가 남자에게 걸렸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이 주민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이웃 주민은 전했다.

◇"수색차량서 잠자"…안이한 경찰

탐문에 나섰던 경찰들도 소극적인 태도로 탐문수색을 벌였다. A씨 남동생(25)은 경찰이 누나 A씨를 찾기 위해 탐문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지난 2일 오전 2시 19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현장에 있던 수원 중부경찰서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는 "누나가 112신고를 했는데 '건물 안'에 있는 것 같다"고 했고, 남동생은 "건물 안에 있다면 주민들을 다 깨우더라도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가며 샅샅이 뒤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형사는 "밤이 늦어 집안을 일일이 수색하는 것은 현실상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경찰은 당시 범행 현장 10m까지 접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관직무집행법 7조에는 "인명·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위해가 절박한 때에 그 위해를 방지하거나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하여 부득이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타인의 토지·건물 또는 선차 내에 출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 언니(32)도 경찰에게 연락을 받고 2일 오전 3시 10분쯤 사건 인근 현장을 찾았다. 한 수퍼마켓 앞에 경찰 승합차가 주차돼 있었고, A씨 언니는 승합차 안에서 탐문 수사팀의 무전을 들으면서 경찰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A씨의 언니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승합차 안에서 대기하던 형사 2명이 잠을 자고 있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동생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지금 밖에서 열심히 찾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한 뒤 다시 졸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