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근육을 이렇게 열심히 쓰는 여배우가 있었을까. 탤런트 박하선(25)은 '예뻐 보이려는 노력을 포기한'덕에 오히려 시청자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 배우다.
지난달 말 끝난 MBC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박하선은 표정 하나만으로 '기승전결'을 얘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웃을 땐 눈이 아예 사라지고 백구처럼 혀가 쏙 나온다. 화날 땐 윗입술부터 들리고, 복수심에 불탈 땐 눈썹까지 떨린다. 김병욱 감독이 "눈물과 웃음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배우"라고 평했을 정도. 방송에서 그가 보여준 '고양이 울음소리' '강아지 울음소리' '롤리폴리 춤' 등은 '3종 세트'란 별명으로 불리며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기도 했다.
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박하선은 그러나 "지금 인기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거품 같은 거잖아요, 금세 사라지는. 잠시 머무는 관심에 취해 있기엔 전 앞으로 갈 길이 더 멀어요." 말투는 당찼고, 눈빛은 또렷했다.
2005년 SBS 드라마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로 데뷔한 그다. 그때 나이 19살. 고등학교 3학년 때 영화 보러 갔다가 소위 '길거리 캐스팅' 됐다. 그 후 '경성스캔들' '왕과 나' '그저 바라보다가' '멈출 수 없어' '동이' 같은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했고, 영화 '바보' '영도다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도 나왔지만 크게 인기를 끌진 못했다. 박하선도 말했다. "'동이'에서 인현왕후로 주목받은 게 전부예요. 스스로 꽤 예쁘고 잘났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데뷔해보니 전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8개월 내내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봤고, 내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적도 있어요."
박하선을 버티게 한 건 '8할의 오기'였다고. 그는 "사극 하기 전엔 '넌 사극엔 안 어울린다', 사극하고 나선 '현대극엔 안 어울린다', 시트콤 하기 전엔 '그냥 정극만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잘할 수 있어. 두고 봐'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참하고 단아한 이미지를 벗고 싶은 갈증. 그래서 김병욱 감독 시트콤에 꼭 출연하고 싶었지만 연기는 쉽지 않았다. 박하선은 "현장에서 울어버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극 중 하선이 고시생 영욱(고영욱)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데이트를 이어나갈 때였다. "머리론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갑갑해서 연기하다 엉엉 울었어요." 놀란 김 감독이 "너 왜 그러느냐. 연기하기 싫으냐. 피곤하냐"라고 재차 물었단다. "감독님은 사실 제가 그냥 평탄하게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인 줄 아셨대요. 처음 아신 거죠. 제가 얼마나 예민한지….(웃음)"
극 중 하선의 모습도 실제 자신과 김 감독이 대화를 나누면서 만들어 나갔다고 한다. 가령 하선이 극 중에서 지석(서지석)과 노을을 보며 "연애는 아름답지만, 저렇게 사라지는 저녁노을 같을 수도 있다"라고 하는 장면은 박하선이 김 감독에게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은 예쁜 저녁노을'을 휴대전화로 찍어 보여준 덕에 나왔다. 병원에서 지석과 입맞춤할 때 하선이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저도 모르겠다"고 했던 건 3~4일 밤샘 촬영 끝에 박하선이 현장에서 "제가 왜 우는지 저도 모르겠다"고 울음을 터뜨렸던 것을 김 감독이 기억하고 대본에 녹인 것. 박하선은 "그렇게 주물주물 조소를 하듯 이어붙인 캐릭터라서 끝나고 나서도 떼어놓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박하선은 "30살 전 제대로 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 앞으로도 몸 사리지 않고 꾸준히 할 거예요. 인기는 잠깐이지만, 연기는 영원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