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중 정치부 정당팀장

민주통합당이 최근 "우리나라에 빅 브러더(Big Brother)가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만들어 개인적인 삶을 즐기는 자유를 착취했다"는 논평을 냈다. 빅 브러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온다. 모든 시민을 텔레스크린으로 완벽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자다.

민주당 후보들은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 정권의 맥(脈)을 잇는 빅 브러더'라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계속 던지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문건이 폭로되고 김제동·김미화씨도 때맞춰 "우리도 2년 전에 사찰받았다"고 주장하니, 일반 국민들은 '모두가 사찰받는다는데 나만 둔감했나' '대한민국이 스탈린 체제의 소련 같은 나라라면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당장 11일 총선에서 표로 새누리당을 응징하는 게 급선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그런데 그 빅 브러더가 제 식구조차 제대로 감시 못해 기록들이 더 누출될 처지다. 이미 공개된 문건 2619건 중 80%는 노무현 정권 때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을 쥐에 비유하고 대통령 동상을 부수는 동영상이 돌아다닌 지 오래인데 빅 브러더는 뒷짐을 지고 있는 모양이다. 사회 지도층을 비하하고 욕설을 퍼붓는 인터넷 방송을 1000만명이 다운로드하고 그 아류 인터넷 방송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말 빅 브러더가 있다면 이럴 수 있을까.

빅 브러더의 '몸통'을 자처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노동운동을 하다 대선 때 MB를 도운 공로로 처음 공직을 맡은 사람이다. 실무 책임자인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노동부에서 20여년 근무하다 낯선 직책을 맡았다. 그는 경북 영덕 출신이라는 이유로 발탁됐다. 진경락 총괄기획과장 역시 행시 출신으로 노동부에서 10여년 일했다. 이들이 총리실·행정안전부·경찰·국세청 직원 40여명을 지휘했다. 정통 엘리트 공안 요원들이나 '1984년'의 빅 브러더는 이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아마추어 풋내기들'이라고 코웃음을 칠 것 같다.

김제동씨는 엊그제 MBC 노조 인터뷰에서 "국정원 직원이랑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친해졌다는 생각을 했다. 술이 너무 취했다. 협박이나 탄압이라고 생각 안 했다. 제 자랑이지만 그 정도 사람들은 별로 겁도 안 난다"고 했다. 반면 공지영씨는 김씨가 자기와 만나 "(2년 전부터) 무대 올라가는 게 공포스럽다. 약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개그맨의 달라진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김씨는 "신문 1면에 이름 나게 해준 정부에 감사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어설픈 빅 브러더가 김씨의 개그 소재가 된 것 같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매년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내놓는다. 2011년에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22위였다. 평점 8.0 이상이면 완전한 민주주의로 평가받는데, 우리나라는 2006년 7.88(결함 있는 민주주의)에서 2010년 8.11, 2011년 8.06으로 올라갔다.

야당은 현 정권을 반(反)민주 정권으로 몰지만, 적어도 공안기관의 사찰 능력에 관한 한 과거 정권일수록 셌다. 군사정권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DJ 정권 때도 수천명을 도청한 혐의로 전직 국정원장 2명이 구속됐다. 노무현 정권도 야당의 대선 후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잘못을 덮자는 게 아니다. 그들이 행한 사찰의 범위, 은폐 의혹의 진실과 청와대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빅 브러더 치하에 살고 있다고 자꾸 주입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정말 그렇다면 필자부터 거리로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