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일 충남 지원 유세길에서 세종시(연기군)를 뺐다. 그는 천안에서 첫 유세를 한 뒤 바로 공주로 이동했다. 세종시는 천안과 공주로 가는 길에 있다. 박 위원장은 천안과 공주에서 "세종시는 저에게 있어 민생과 신뢰의 상징"이라고 했다.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끝까지 반대했던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자신에게 세종시는 약속을 지키는 문제의 '상징'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세종시를 들르지 않고 건너뛴 것이다.
반면 4일 충남 유세를 온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천안에서 시작해 세종시를 거쳐 공주로 가는 코스를 밟았다. 한 대표는 연기군 조치원 시장에서 "박 위원장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세종시는 민주당과 충청도민이 지켜낸 것"이라고 했다.
◇"지금 가면 오히려 민주당만 이득"
박 위원장이 세종시를 방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 관계자는 "모두가 알지만 차마 겉으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세종시에 민주통합당 이해찬 전 총리와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 같은 인사들이 출마하면서 교수 출신인 새누리당 신진 후보가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일 문화일보·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 이 후보 32.7%, 선진당 심 후보 23.1%, 새누리당 신 후보 11.7%의 지지율을 보였다.
새누리당에선 박 위원장이 방문한다면 신 후보의 지지율은 올라가겠지만, 보수표를 분산시켜 민주당의 당선만 도와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또 박 위원장으로선 향후 대선 길목에서 충청권 보수 연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선진당 심 후보는 틈만 나면 "내가 당선돼야 보수정권 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보수단체 "충청권 보수 단일화하라"
보수 시민단체의 연합체인 '한국시민단체 협의회'(공동대표 서경석 목사)는 지난 3일 대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청권에서 보수가 단일화하면 5석은 더 건질 수 있다"며 "특히 세종시는 심 후보로 보수 단일화를 하라"고 압박했다. 서 목사는 "충청권 단일화의 실패로 보수진영이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책임은 전적으로 박 위원장에게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선거에서 정치공학적 계산을 앞세운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박 위원장의 성격상 선거 연대를 앞장서서 추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박 위원장 주변의 전언이다. 충청지역에선 새누리당 신 후보가 2006년 심 후보가 창당했던 국민중심당에서 공천심사위원을 했던 만큼, 두 사람이 한 번쯤 터놓고 선거 연대에 관한 논의를 해볼 수 있는 사이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심 후보 측은 "이와 관련해 어떠한 접촉도 없다"고 했고, 신 후보도 "최근 여론조사는 오류가 많다. 단일화는 내 쪽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충청권 전체의 선거 연대를 놓고도 선진당과 새누리당은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양보하라", "급한 건 선진당 아니냐"는 식의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박 위원장이 나중에 세종시를 방문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