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일 충남 지원 유세길에서 세종시(연기군)를 뺐다. 그는 천안에서 첫 유세를 한 뒤 바로 공주로 이동했다. 세종시는 천안과 공주로 가는 길에 있다. 박 위원장은 천안과 공주에서 "세종시는 저에게 있어 민생과 신뢰의 상징"이라고 했다.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끝까지 반대했던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자신에게 세종시는 약속을 지키는 문제의 '상징'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세종시를 들르지 않고 건너뛴 것이다.

반면 4일 충남 유세를 온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천안에서 시작해 세종시를 거쳐 공주로 가는 코스를 밟았다. 한 대표는 연기군 조치원 시장에서 "박 위원장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세종시는 민주당과 충청도민이 지켜낸 것"이라고 했다.

4일 경기 남부 및 인천 지역 유세를 펼친 박근혜(왼쪽)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인천시 남구 용현시장을 방문해 한 노점상 할머니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지금 가면 오히려 민주당만 이득"

박 위원장이 세종시를 방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 관계자는 "모두가 알지만 차마 겉으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세종시에 민주통합당 이해찬 전 총리와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 같은 인사들이 출마하면서 교수 출신인 새누리당 신진 후보가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일 문화일보·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 이 후보 32.7%, 선진당 심 후보 23.1%, 새누리당 신 후보 11.7%의 지지율을 보였다.

새누리당에선 박 위원장이 방문한다면 신 후보의 지지율은 올라가겠지만, 보수표를 분산시켜 민주당의 당선만 도와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또 박 위원장으로선 향후 대선 길목에서 충청권 보수 연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선진당 심 후보는 틈만 나면 "내가 당선돼야 보수정권 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가운데) 대표가 4일 충남 공주시에 출마한 박수현(왼쪽) 후보와 함께 시장을 방문해 노점 상인의 손을 잡고 이야기 하고 있다.

보수단체 "충청권 보수 단일화하라"

보수 시민단체의 연합체인 '한국시민단체 협의회'(공동대표 서경석 목사)는 지난 3일 대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청권에서 보수가 단일화하면 5석은 더 건질 수 있다"며 "특히 세종시는 심 후보로 보수 단일화를 하라"고 압박했다. 서 목사는 "충청권 단일화의 실패로 보수진영이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책임은 전적으로 박 위원장에게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선거에서 정치공학적 계산을 앞세운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박 위원장의 성격상 선거 연대를 앞장서서 추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박 위원장 주변의 전언이다. 충청지역에선 새누리당 신 후보가 2006년 심 후보가 창당했던 국민중심당에서 공천심사위원을 했던 만큼, 두 사람이 한 번쯤 터놓고 선거 연대에 관한 논의를 해볼 수 있는 사이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심 후보 측은 "이와 관련해 어떠한 접촉도 없다"고 했고, 신 후보도 "최근 여론조사는 오류가 많다. 단일화는 내 쪽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충청권 전체의 선거 연대를 놓고도 선진당과 새누리당은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양보하라", "급한 건 선진당 아니냐"는 식의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박 위원장이 나중에 세종시를 방문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