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열린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메릴 스트립의 품으로 갔다. 열일곱 번째 노미네이트(후보)에, 세 번째 수상이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오스카를 안겨준 영화가 바로 '소피의 선택'(사진·알란 파큘러 감독·1982).

여주인공 소피는 '살아남은'인간이다. 이것은 지독하게 잔인한 정의(定義)다. 잘 교육받은 지성인이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어딘가로 끌려간다. 그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며, 그곳에 갈 때 그녀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앞에 잔혹한 두 갈래 길이 놓인다. 독일인 장교가 큰 선심 쓰듯 제안해온 것이다. 두 아이 중에 한 아이를 골라라, 그러면 그 아이만을 가스실로 보내겠노라고. 이는 곧 선택하지 않은 다른 아이는 살려주겠다는 뜻이 된다.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은 상황이다. 그 지옥 속에서 나약한 한 인간인 소피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소피의 공포에 질린 눈동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이냐고. 크고 작은 선택들 앞에 직면할 때마다 소피는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살면서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고 사는 인간은 없다. 소피의 선택이 그랬듯이 운명 앞에서 인간은 조금이나마 덜 나쁜 선택을 하기 위해 기를 쓰고, 그러다 '얼떨결에' 아무 쪽이나 택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머지 삶은 그 찰나의 실수를 책임지기 위해 바쳐진다. 우리가 소피의 공포에 생생히 공감하며 함께 몸을 떨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녀가 두 아이 중 누구를 골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홀로 살아남은 소피의 텅 빈 눈빛이 모든 걸 말해준다. 다시 햇볕 아래, 꾸역꾸역 누추하게나마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더 가혹한 형벌이다. 살아남은 자는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중략)/'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