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연기의 베스트로 ‘살인의 추억’ 박두만 형사를 꼽아왔기에 ‘하울링’은 내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 작품입니다. 눈빛과 말투는 물론이고, 걸음걸이까지 진짜 형사 같은 송강호의 연기를 모처럼 만났습니다. ‘하울링’에서 송강호는 범죄와 대결하는 인물의 긴장감 뿐 아니라, 세상살이의 여러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한 사내의 내면을 탁월하게 드러냅니다.

유하 감독은 '늑대개의 연쇄살인'이라는 자극적 소재를 끌어들였지만 '하울링'을 범죄 스릴러로 끌고가지는 않습니다. 피튀기는 액션 활극이나 정체모를 맹수의 공포 같은 건 이 영화의 핵심에 있지 않습니다. 대신, 형사들과 범죄자들에서 늑대개까지, 복잡한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우리 삶의 황폐한 풍경들을 흥미롭게 드러냅니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대체로 세상살이가 만족스럽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강력계 형사 상길(송강호)부터가 그렇습니다. 인사 때마다 후배에게 밀려 사회적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는 남자입니다.

처음 자동차 안에서 사람이 불타 숨지는 사건이 배당됐을 때 그가 영 마땅찮아 했던 이유도 ‘인사 고과에서 별로 점수 못 받는 자살 사건’이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강력범죄 수사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새파란 신참 여자형사 은영(이나영)까지 파트너로 떠맡겨지니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은영 역시 마음 속에 여러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혼녀인 그녀는 여성으로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강력계 내에서도 남자 동료들에게 대접받지 못합니다. 여자다운 여자도 아니고 형사다운 형사도 아닌 존재로 겉도는 삶을 삽니다. 이런 인물들이 엽기적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사건과 얽히는 ‘하울링’ 에는 우리 삶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스며 있습니다.

특히 가족이라는 것에 관한 유하 감독의 시선이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가 쉬고싶은 품’ 쯤으로 아름답게 기억하지만, 이 영화는 때론 가족이란게 얼마나 ‘이기적’인지도 느끼게 합니다. 영화 후반에 이르면 가족이란 필요하면 다른 가족을 해치면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화목’하게 ‘단합’할 수 있는 무서운 집단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느 가족의 품에 안겨 양육된 늑대개의 삶도 아이러니칼하고 비극적입니다. 이 가족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 가족의 ‘이익’을 위해 자신은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을 물어죽이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 맙니다.

‘하울링’은 형사 드라마의 형태를 가졌지만 범인과 형사의 긴박한 대결을 넘어서는 여러 세상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감독과 배우에 관한 기대치를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감독이 궁극적으로 빚어내고 싶었던 이 영화만의 개성, 메인 테마가 무엇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영화를 본 뒤 유하 감독의 어느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하울링’을 만들면서 가졌던 감독의 고민을 알게됐고, 영화 속에서 느꼈던 혼란의 이유를 짐작하게 됐습니다. 그건 스토리상으로 첫 번째 인물이라고 하기 어려운 남자 형사 역에 카리스마 강한 스타 송강호를 캐스팅한데서 빚어진 고민과 혼란이라고 봅니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의 원작인  노나미 아사의 ‘얼어붙은 송곳니’는 남자들이 판치는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자형사의 시선으로 경찰사회와 사건을 바라보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유하 감독은 인터뷰에서 “남자형사는 영화에서 부록 같은 캐릭터”였는데도 시나리오를 읽은 송강호가 출연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반갑다기보다 솔직히 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답니다. 감독은 “송강호라는 배우가 남자 파트너로 들어오는 순간 관객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강하게 생겼다”며 이미 써놓은 시나리오를 송강호 때문에 일부 수정하여 남자 형사의 비중을 늘렸음을 시인했습니다.

하울링’에서는 고민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영화 초반의 분위기만 보고 조직 내에서 겉도는 남자 형사가 대형 범죄와 맞닥뜨리는 ‘송강호 영화’인줄 알았던 나는 후반으로 갈수록 은영이 사건의 새로운 비밀을 파헤치고 늑대개와 교감하며 영화의 핵심을 떠맡는 ‘이나영 영화’로 옮아가는 모습을 보며 약간의 혼란을 느꼈습니다. 스토리는 여형사의 캐릭터에 밑줄을 치고 있지만, 이나영이 맡은 은영의 존재감이 스타 송강호에 일정부분 가려지는 부분도 아쉬웠습니다. 소설처럼 ‘여자형사의 분투기’로 갔으면 클라이맥스에서 은영이 보여준 늑대개 추격 신의 강렬함이 훨씬 더했을 것입니다.

물론 무조건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는 것만이 최선의 영화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원작 소설의 테마를 능가하는 새로운 테마가 영화 속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데, ‘하울링’은 의미있는 세상 풍경들을 비춰내고 있지만 테마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스타를 부각시키면서 영화적 새로움도 놓치지 않는다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