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오늘 어디에서 어떤 대중가요를 듣든 그의 목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송대관의 '네 박자', 장윤정의 '어머나', 이승철의 '소리쳐', 원더걸스의 '텔미'와 티아라의 '러비더비'까지. 그의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세는 편이 훨씬 쉬울 것이다.
한국 가요계의 독보적 코러스로 꼽히는 김현아(43) 얘기다. 1991년부터 2만5000여곡의 가요에서 가수들의 목소리를 빛내준 김현아가 처음으로 가수들과 나란히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22일 열리는 '제1회 가온차트 K팝 어워드'의 '올해의 실연자 코러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것.
가온차트 K팝 어워드는 정부 지원을 받아 공인 음악 차트를 표방하며 출범한 가온차트가 마련한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문화부가 후원한다. 주요 대중음악 시상식이 가수·작곡자뿐 아니라 코러스에게도 상을 주는 것은 처음. 19일 홍대 앞에서 만난 김현아는 "정장 하나 없는데 뭘 입고 갈지 고민"이라며 "내가 잘했다기보다 코러스의 중요함을 알린 데 대한 격려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현아는 음반업계에서 언제나 섭외 1순위다. "탄탄한 가창력으로 강약과 톤을 조절하며 가수들을 뒷받침해주는 능력은 그를 따라갈 사람이 거의 없다"는 평이다. "제가 가수나 노래 특성을 파악한 뒤 알아서 소리를 만들어주니까 편해하는 것 같아요. 20년 넘는 세월이 만들어주는 짬밥이라고나 할까요. 하하."
흔히들 '코러스'하면 TV쇼 무대 뒤편에서 여러 명의 남녀가 마이크를 잡고 '뚜디뚜바' '워우우워' 하는 장면이 떠올려진다. 하지만 실제 녹음할 때는 한 명이 반복 녹음하며 여러 개의 소리를 만들어낸다고 하니 엄청난 육체노동이다. "한 곡을 위해 64번까지도 녹음했다"고 한다.
김현아는 한때 가수였다. 1990년대 포크 음악을 이끈 '여행스케치'의 초기 멤버였고, 지금까지도 애창되는 듀엣곡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의 여성 보컬이다. 그러나 생계 문제로 2집을 끝으로 가수의 꿈을 접었다. "한 달 내내 공연해도 손에 쥐는 돈은 교통비 남짓이었어요. 아버지가 몸져누우시고 집안이 기울어 소녀가장이 됐죠. 91년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코러스 첫 작품이에요."
자신을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생계형'으로 뛰다 보니 뜻밖의 히트곡도 나왔다. 97년 국내 TV에서 방영됐던 인기 일본 애니메이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의 한국어판 주제가를 부른 것. 그렇게 20년의 경륜이 쌓이며 지금은 '코러스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호원대 등 3곳에서 겸임교수로 제자를 가르친다. "예전엔 코러스가 정말 찬밥이었어요. 지방 공연을 가도 다른 출연자들은 호텔에서 재우는데 코러스는 모텔에서 묵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죠. 지금은 목소리도 소중한 악기로 인식되고 있어 기뻐요."
김현아는 요즘 즐거운 고민이 있다. '김현아를 위한 헌정앨범'을 내겠다며 가수들과 듀엣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음반사 제의가 잇달아 들어온 것. 가요사상 최초의 '코러스를 위한 헌정 앨범'이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그는 신중했다. "오랫동안 남의 노래 완성도를 높여주는 일을 하다 보니 막상 제 노래를 한다는 게 두려워요. '김현아니까 잘 부르겠지'하는 기대감도 부담이죠.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할 정도니 이 길, 잘 선택한 거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