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은 최근 20년 만에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카카오톡을 하는 지금 이 순간도 그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고. 잠들기 전, 토막 시간을 내 그녀가 카톡 대화를 나눠주었다.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고 옆집 언니같이 포근한 박칼린은 지금 얼룩말 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다.
# ‘내일 공연이 있는 자라면 어떤 이유로도 오늘 죽어선 안 된다. 쓰러지기만 하고 반드시 공연 시작 전까진 다시 살아나야 한다.’
박칼린의 블로그에는 공연을 대하는 그녀만의 비장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광대같이 사는’ 그녀는 관객과의 약속이 연기력보다 우선이라고 말한다. 오죽하면 뮤지컬 ‘아이다’ 공연 당시, 차들로 꼼짝 않는 동호대교 위에서 지각할까봐 자신의 차를 포기하고 퀵서비스 오토바이에 올라 공연장으로 달려갔겠는가. 그녀는 그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다리가 후들거린 딱 두 번의 순간 중 한 번이라고 말한다. 나머지 한 번은 깡패들에게 붙잡힐 뻔했던 어린 시절.
-작년 말 뮤지컬 로 20년 만에 무대에 복귀했어요. 오랜만이라 떨리기도 했을 텐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연습실은 열의 가득 찬 배우들로 여름 더위보다 후끈!! 매우 행복한 나날입니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아내 역을 맡았죠? 내용이 꽤 슬프고도 심오하던데.
"모두들 자주 울었다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한 번씩은 엉엉. ㅋㅋㅋ 워낙 슬픈 작품이라서요."
-'남자의 자격'에서 함께한 최재림 씨도 출연하던데요? 원래 한 번 호흡을 맞춘 배우와는 오래가는 편?
"사람을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물건도 엄청 오래 쓰는 편. 몇몇 사람들은 만난 첫날부터 평생 함께할 거란 느낌을 받기도 하죠. 하하하. 그들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박칼린의 책 '그냥'에 보면 그녀가 'inner circle'로 지칭한 가까운 지인들 가운데 최재림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번 작품 속 본인의 연기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
"어려운 질문…. 매일매일 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노래는 어땠는지, 어제와 비교해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거의 매일 확인해요."
-모니터링은 본인 스스로? 누가 조언해주나요?
"같은 무대에 서고 있는 배우이자 친구인 재림 군에게 물어보죠. 근데 가끔 화내요. 너무 매일 물어보니까…. 왜 화내는지 알 수가 없네요. 쩝…."
-작년 한 해 동안 봤던 뮤지컬이나 연극 중 가장 재밌었던 걸 추천한다면?
"연극 '웃음의 대학'! 대본도 정말 훌륭했고, 두 연기자… 설명이 필요 없었어요. 간만에 좋은 작품 보았죠!"
-'코리아 갓 탤런드'이하, 코갓탤)> 시즌 1에서 심사를 맡았는데, 어떤 참가자에게 점수를 많이 주게 되던가요?
"진지한 참가자~ 물론 실력도 갖춘."
-채널마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가 나왔어요. 지겨울 법도 한데.
"뭐든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면 오케이. 의미가 부여된 거면 더 좋고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많다고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잘 만들어진 퀄리티 있는 프로그램이면 좋고, 특히 일반인에게 기회를 주는 요즘 같은 서바이벌 프로면 ㅇㅋ~"
-다른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 중 즐겨보는 게 있다면?
"한때 미국판 '댄싱 위드 더 스타' 좋아했고요. 지금은 호주판 '주니어 마스터 셰프'랑 원조 '마스터 셰프'. 그리고 최근 미국의 '바비큐 마스터' 재밌더라고요. 요릴 좋아하니 아무래도 요리 프로들이 즐거워요~~~"
-칼린 쌤이 출연한 '코갓탤'을 제외한 오디션 프로 중 특별히 기억나는 무대나 출연자는 누구?
"외국 거라…. '주니어 마스터 셰프'의 모든 출연진과 특히 첫 우승자 소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을 놀라운 예술품으로 만들어내다니…!!! 엄청 흥미진진하게 봤어요!!!"
-참, 그러고 보니 작년 '코갓탤' 파이널에서 입고 나온 에메랄드색 드레스가 화제였죠! 덤으로 어깨의 문신도. ^^
"태국 전통 '불' 문양 속에 활짝 웃고 있는 도깨비가 있어요. 뜻은… 불처럼 정열적으로, 활짝 웃으면서 살자?!"
-레드카펫 드레스는 여자의 로망이잖아요. 주로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세요?
"(드레스 고르는 걸로) 크게 스트레스 받지는 않는 편이에요. 스타일리스트를 믿는 편이지만 일단 편해야 하죠. 단색을 좋아하고, 심플한 것. 그리고 제 피부색과 체형에 어울리는 정도…?? 주로 라임과 푸른 계열의 색상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옷차림?
"아하하하하하하. 완전 편한 집 복장! 얼룩말 무늬의 잠옷 바지와 나이키 스웨트 셔츠 차림. 오늘은 집에서 쉬고 있는 모양새죠!"
# 트위터에서 박칼린을 팔로우한 팬이라면 그녀가 상당한 동물애호가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효리·이상순 커플 못지 않게 유기견 보호에 관심 많은 그녀는, 작년 초 네이버에서 주최한 유기견 관련 재능기부 캠페인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현재 박칼린과 동고동락하는 삽살개의 이름은 '해태'. 종종 '태'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칼바람이 부는 날만 아니면 태와 함께 밤책(그녀는 밤 산책을 '밤책'이라 줄여 부른다)에 나선다.
-칼린 쌤의 팔로어 중 '해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해태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어릴 적부터 막연한 꿈 중 하나가 삽살개를 키우는 거였어요. 12년 전 삽살개보존회에서 '도깨비'를 처음으로 분양받아온 후, 두 번째로 데리고 온 게 해태예요.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내 사랑'이죠. 열한 살이지만 제 눈엔 여전히 귀여운 해태~"
-해태 말고 또 다른 애완동물 입양 계획이 있으신지?
"지난주, 같이 사는 제자 샹(별명)이 8년째 키우던 유기견 '아루'가 죽었어요. 곧 또 한 마리 데려올 생각이에요."
-네이버에서 유기동물 관련 재능기부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제 가족과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은 전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동물과 어린이를 해치는 사람들을 정말 증오하죠. 근데 유기견의 경우, 착한 사람들조차 잘 몰라서 해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최대한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고 보니 해태도 작년에 유기견이 될 뻔했다면서요. 트위터에 아주 장황하게 쓰여 있더라고요.
"어느 착한 분이 양재동 AT센터 앞에서 해태를 발견하고 신고해주신 덕분에 보호소에서 찾았어요. 천만다행이었죠. 제가 사는 동네가 유기동물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이라, 저도 제자 샹과 함께 유기견과 유기묘들을 많이 살렸죠. 잡아서 씻겨주고, 새 집 찾아주고 그랬어요."
-그 정도의 정성이라니!
"근데 개인적으론 살리는 것보다 안 생기게 하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명을 액세서리처럼 생각해서 쉽게 사고 버리는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해요!!!"
# 박칼린의 생일은 5월 1일이다. 작년 그 무렵, 그녀는 킥뮤지컬스튜디오(박칼린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곳) 사람들과 손수 만든 음식들을 나눠 먹었다. 메뉴는 직접 구운 초콜릿케이크와 바닐라케이크. 그뿐 아니다. 숯불에 갓 구운 쇠고기 패티에 싱싱한 야채를 곁들인 수제 햄버거까지. 지인들의 트윗을 살펴보니 그 맛이 상당히 수준급이라고! 이 정도면 준비된 신붓감이 따로 없다.
-요즘 채식주의가 급물살을 타는 중인데. 칼린 쌤도 혹시 채식주의자?
"흠……… 인간이 매머드를 잡아먹기 전부터 육식 DNA 구조를 가진지라 쉬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사실 난 몸이 원하는 걸 먹기 때문에 뭐든 크게 가리지는 않는 편. 결론은… 채식주의자라 해도 될 만큼 샐러드를 사랑하지만 채식주의자도, 그 어떤 주의자도 아니에요. 참고로 '주니어 마스터 셰프' 챔피언이 만들어주는 음식이라면 뭐든 먹겠음. 캬캬캬."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은?
"생야채. 긍께 샐러드 무지 좋아하고, '나만의' 토마토 샌드위치를 좋아하고, 무겁지 않고 가벼운 음식을 '조근조근' 먹는 걸 좋아함. 양 적은 걸로!"
-그렇담 못 먹는 음식도 있겠죠?
"못 먹는다기보다 안 먹는 건… 시금치와 마. 한 번 먹고 고생해서 다시는 안 먹게 되고요. 마 같은 촉감의 음식도 잘 안 먹어요. Slimy(끈적끈적)해서."
-칼린 쌤 요리를 직접 맛본 주변 사람들 반응이 굉장히 좋던데요. 스스로 요리 솜씨를 평가한다면?
"요리솜씨라… 음악 못할 날을 대비해서 개업할 음식점의 메뉴까지 이미 다 짜놨어요! 크하하하."
-뭘 파는 음식점이길래?
"베이커리 오픈하라는 얘긴 많이 들었어요. 케이크와 파이, 디저트에 대한 반응이 좋아요. 음악 못할 날을 위한 대비책! 하하하."
-주량은 어느 정도 되나요? 와인, 보드카, 막걸리, 소주, 위스키 중 택일한다면?
"당연히 보드카~~~!"
-술에 취하면 조용히 자는 편? 아니면 말수가 많아지는 편?
"평소와 비슷한 편?"
-여가시간엔 주로 뭐하세요? '한 승마'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걸 즐겨요. 공연은 당연히 자주 보려고 하고, 요리도 하고요. 장비 많은 스포츠는 원래부터 안 좋아했어요. 예를 들면 스키 같은 것?"
-트위터에서 대림미술관을 팔로하셨던데요.
"좋은 전시는 웬만하면 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Bilbao Guggenheim)에 다녀왔어요."
# 작년 9월, 박칼린은 여행길에 올랐다. 유럽 전역을 기차로 돌았고 귀국 후 곧장 뮤지컬 연습에 들어갔다. 대중없는 스케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 여행은 그녀에게 양보할 수 없는 휴식이자 포기할 수 없는 낙이다.
-두 달 전 모 프로에서 "독단적이면서 비뚤어진 면이 있는 체 게바라 같은 남성이 이상형"이라고 하셨어요.
"사실 굳이 묻길래 대답한 거예요. 별로 정해진 이상형은 없는 듯. 그냥 딱 보면 알 수 있지 않나요?"
-'어두운 면이 있는 외톨이 같은 스타일'이 좋다고 한 적도 있네요. ^^; 주로 다크한 매력에 끌리시나 봅니다.
"음… 말하자면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그냥, 보고 만나면 알게 되는 게 사람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본인의 성격은 어떤가요? 언젠가 "저는 사실 성격이 좀 못됐습니다. 무대 위에서 더 그런 기질이 나옵니다"라고 고백(?)하셨는데.
"온순한 양. 끝! 제 의견을 물었던 것 맞죠? ^^"
-최근에 간 여행지는 어딘가요?
"지난 9월에 기차로 스페인 전역을 한 바퀴 돌았어요."
-여행은 아무래도 혼자 가는 재미죠.
"10대부터 30대 초중반까지는 혼자 다녔어요. 근데 더 나이를 먹으니까 친구랑 다니게 되더라고요. 지난 10여 년간은 그랬어요."
-아직 못 가본, 꼭 한번 가보고픈 여행지가 있다면요?
"아프리카에서 한 달 정도 텐트 치고 사파리를 하고 싶어요. 대자연을 느끼고 싶다는 이유도 있지만,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직접 마주하면 제가 할 일이나 숙제가 또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3월부터 KAC 한국예술원 뮤지컬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고 들었어요. 수강생이 몰리겠는데요?
"어디에서든 새로운 학생들을 만난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죠~."
-교단에 선 박칼린은 어떤 선생님인가요?
"현장과 똑같다는 소문이…."
-근데 문득, 왜 갑자기 커트하신 건지 궁금해졌어요.
"글쎄요. 별 의미를 담고 자른 게 아니라 기억조차 나질 않네요."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숫자가 '22'인 이유는?
"가장 부드러운 숫자 같아서! 쓸 때도 편하고요."
-정말 마지막으로, 박칼린에게 무대란?
"가장 편한 곳."
올해로 44세. 박칼린은 골드미스다. 사람들은 그녀를 설명할 때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는다. 그녀는 공과 사가 매우 분명한 사람이다. 무대 위에서의 칼같이 단호하고 엄격한 모습은 이미 ‘남자의 자격’을 통해 보았으리라. 사적으로는? 감기에 걸렸다며 ‘affa affa mai affa(아파 아파 마이 아파)’라는 애교스런 트윗을 올리는가 하면, ‘쪽셀링(쪽팔다=창피하다)’, ‘인얼뷰(inner view=interview)’ 같은 신조어도 거침없이 남발(?)한다. 하나 더, 자주 사용하는 웃음소리는 ‘캬캬캬’다. 이 두 모습이 박칼린 안에 공존한다. 일적으로는 프로페셔널하고, 사적으로는 약간 푼수끼 있는 옆집 언니. 오늘 카톡 인터뷰에서는 후자의 박칼린을 보았다.
박칼린이 트위터에 남긴 '홈메이드 버터' 레시피
1. 생크림 한 통을 넉넉한 유리병에 부어 흔든다.
2. 마구 흔든다. '마니' 흔든다. 팔 아플 때까지 흔든다.
3. 그러면 케이크에 발라 먹는 생크림처럼 되는데, 계속 좀 더 흔들다 보면 버터랑 물이 분리된다. 위층의 물은 버린다.
4. 아래층의 응고된 버터를 물에 헹군 다음, 소금 간을 약간 한다. 그럼 싱싱한 버터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