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예상 밖의 결과가 연출됐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적어도 55:45, 많게는 70:30까지 닉 디아즈의 우세를 점쳤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김동현에게 생애 첫 실신패를 안겼던 카를로스 콘딧이 '좀비 파이터' 닉 디아즈를 심판전원일치 판정승으로 제압하고 조르주 생피에르(GSP)가 부상으로 빠진 UFC 웰터급의 잠정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5연승의 급상승세를 탄 콘딧은 이로써 GSP가 전방십자인대 부상에서 회복되는 대로 진정한 챔피언을 향한 도전의 기회를 얻게 된다.
콘딧은 시종일관 밀고 들어오는 디아즈의 기세에 밀렸지만 전략에서는 그 누구 못지않게 영리했다.
마치 지난 대결에서 경기가 말리자 슬슬 불안감을 느끼며 뒤로 물러나는 김동현을 향해 플라잉 니킥과 소나기 펀치로 실신시킨 장면을 연상시키듯 그렉 잭슨 아카데미가 짜준 전략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난적 디아즈를 격침시키는데 성공했다.
콘딧은 준비된 전략대로 경기를 풀어간 반면 디아즈는 조바심에 경기를 그르쳤다.
디아즈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는 경기 전 인터뷰만 보더라도 여실히 증명된다. 그는 "콘딧과 나는 차곡차곡 포인트나 쌓자고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치고받는 게 주특기다. 도망가지 말고 서로 잘하는 난타전으로 끝장승부를 보자"는 식으로 도발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바람이었을 뿐 콘딧과 코치 그렉 잭슨은 애당초 디아즈와 난타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허를 찔러 도망 다니듯 옥타곤 링 주위를 빙빙 돌며 줄기차게 디아즈의 다리를 공격했다. 디아즈는 피해 다니는 콘딧에게 경멸의 메시지를 날리기도 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필승의지를 드러낸 콘딧은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 차곡차곡 포인트를 쌓는 전략과 동시에 지속적인 로우킥 공격으로 마침내 무쇠체력인 디아즈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발이 무뎌진 디아즈를 상대로 4,5라운드에선 보다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를 풀어 마침내 만장일치 판정승을 일궈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으나 꿈에 그리던 UFC 웰터급 잠정챔피언 자리를 차고앉은 것이다.
사실 묵직한 타격이 일품인 콘딧이 디아즈와 난타전을 벌였다고 해도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콘딧은 오로지 이기기 위한 경기를 했고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했다. 굳이 진흙탕 승부가 주특기인 디아즈와 섞여 50:50의 주먹싸움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콘딧의 이번 경기를 보면서 레슬링이 기반이 돼 무패를 질주하던 김동현의 필승공식을 격파했던 경기가 떠올랐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지난 5연승 동안 제이크 엘런버거, 로리 맥도날드, 댄 하디, 김동현, 닉 디아즈 등 동체급 절대강자들을 연이어 격파한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떠오르는 특급유망주 맥도날드에게 생애 첫 패를 안긴 건 물론이고 레슬링이 뛰어난 김동현과 엘런버거, 타격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하디와 디아즈 등이 포함돼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만큼 전략이 좋았고 전략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알린 대목이다.
꼭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는 스타일의 변화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에 따른 맞춤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완성형 파이터로 거듭나고 있는 콘딧이 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