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지붕 같은 한국 건축의 요소를 그대로 쓰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고 했어요. 외국인들도 한국의 미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프랑스 내 한국학의 중심으로 통하는 파리7대학. 1960년대 말 한국학과를 개설한 이곳에 지난해 11월 또 하나의 '작은 한국'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학과가 있는 중앙관 5층 중정(中庭)에 한국식 정원을 꾸민 것. 한양대 건축과를 나와 현재 파리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윤경란(윤스건축 공동대표·40)씨의 작품 '솔섬정원'이다. 프랑스의 건축 전문 웹진에 소개되는 등 현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적 공간미를 세계에 알리는 '건축 한류(韓流)'인 셈이다. 지난달 30일 파리에 있는 윤씨를 전화로 만났다.
복도로 둘러싸인 사각형 정원 가운데에 흙으로 둥근 섬을 만들고 소나무를 심었다. 연못의 고요한 수면 위에 소나무 섬이 떠 있는 형상이다. 윤씨는 "전체에 흙을 채우고 나무를 심어 평범한 정원을 만들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다"며 "사각형과 원을 모아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을 표현했다"고 했다. 그는 "정원 바닥이 얇은데 보강공사는 어렵다는 게 학교의 입장이었다"며 "하중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 공간을 비워야 했다"고 했다.
5층 지붕에는 정원 쪽으로 처마를 달고 한글로 용비어천가, 김수영의 '풀', 윤동주의 '서시', 김소월의 '초혼'을 새겼다. 음각(陰刻)이 아니라 글자 모양대로 구멍을 뚫었다. "글씨를 통과한 햇빛이 바닥에 어리게 했다. 한글 시구(詩句)가 정원을 거닐게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과 한국 문학을 공부하는 곳인 만큼 한글 시를 선보이고 싶었다"며 "구멍을 뚫을 수 없는 기와지붕의 처마 대신 콘크리트로 처마를 만들어 썼다"고 했다.
정원의 네면을 둘러싼 유리문 가운데 한 곳에는 민화 화가 김소선씨의 작품인 호랑이를 그려넣었다. 윤씨는 "험상궂은 맹호(猛虎)가 아닌 친근한 민화의 호랑이"라며 "씩씩하면서도 부드러운 한국인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원을 설치하기로 한 것은 대학이 이 건물로 이전한 2005년쯤이었다고 한다. 윤씨는 "당시 일본·중국식 정원을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며 "한국학과의 마르틴 프로스트 교수가 적극적으로 나선 덕에 한국 정원으로 결정됐다"고 했다.
"프로스트 교수님이 '일본·중국학에 비해 한국학이 주목받지 못하는 점이 늘 안타까웠다'고 하시더군요. 파리에 가장 한국적인 공간을 만들어 건축가로서 한국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