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 ,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전투기를 타고 하늘을 누비는 톰 크루즈의 늠름한 모습은 많은 여성의 마음을 흔들어놓았고, 남자들에게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심어줬다. 영화에서 최우수 전투기 사수를 뜻하는 ‘탑건’처럼 우리나라에도 최고의 공격헬기 사수인 ‘탑 헬리건’이 있다. 얼마 전 열세 번째 ‘탑 헬리건’이 탄생했다. 바로 9년째 헬기 조종석에 앉은 이재호 소령이다.
하늘을 지키는 건 공군만이 아니다. 육군과 해군에도 육군항공과 해군항공이 있다. 육군항공에서는 1999년부터 육군 헬기 조종사 간에 기량을 겨루는 '육군항공사격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이 대회에서 1등을 한 사수에게는 '탑 헬리건'이라는 칭호가 부여되고, 대통령상이 수여된다. 2011년 10월에 개최된 이 대회에서 이재호 소령은 역대 최연소 탑 헬리건이 됐다.
그는 "제 사격술만으로는 결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파트너이자 조종사 역할을 한 신동우 준위, 헬기의 상태를 점검해준 정비사, 헬기에 탄환을 장착해준 무장사 등이 하나가 되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육군항공사격대회는 2명의 조종사가 한 팀을 이루어 한 명은 비행기 조종, 한 명은 사수가 되어 호흡을 맞춘다. 근무 경력, 자질, 비행 기량, 전문지식 등에서 최고의 기량을 갖춘 36개 팀을 엄선해 개최한 이번 대회에서 이재호 소령은 1등의 영예를 안았다. '탑 헬리건'은 1등 팀 사수에게만 부여하는 칭호다. 1등 팀의 조종사는 '우수 조종사'로 불리고 육군참모총장상이 수여된다.
평가 종목은 총 4가지. 제자리 비행하면서 2.5km 거리의 표적을 유도미사일로 사격해 맞추는 '토우 사격', 네 발은 제자리 비행 중에, 두 발은 전진비행 중에 사격을 하는 '라켓 사격', 동그란 원 안에 200발을 사격해 명중한 수를 측정하는 '20mm 공대지 사격', 시속 80km로 움직이는 모형동력비행기의 빨간 천을 명중시키는 '20mm 공대공 사격'.
특히 '20mm 공대공 사격은 시속 80km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로 2m, 세로 42cm의 빨간 천은 눈곱만 한 크기로 보이며 순식간에 휙 지나가버려 가장 어려운 종목으로 꼽힌다. 300발 중 한 발만 명중해도 합격인데, 이재호 소령은 무려 아홉 발을 명중시켰다.
그의 이런 영광은 네 번의 도전 끝에 얻은 결과다. 처음 출전한 육군항공사격대회에서는 사수로, 두 번째는 조종사로 출전했으나 좋은 성적을 못 거두었고, 세 번째 조종사로 출전한 대회에서는 2등을 했다. 당시 파트너였던 사수가 이번에도 함께 호흡을 맞춘 신동우 준위다. 신동우 준위와 그는 절차탁마했다.
'꼭 탑 헬리건이 되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로 기량을 갈고닦았다. 신동우 준위는 탑 헬리건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이는 이재호 소령을 위해 자신은 조종사의 자리를 자처하고 이재호 소령에게 사수의 자리를 내주었다.
이재호 소령이 수상소감을 말할 때마다 신동우 준위에 대한 감사인사를 빼놓지 않는 이유다. 그는 "신동우 준위와는 애인과도 같은 끈끈함이 있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탑 헬리건이 되기 위해 소위 피나는 연습을 했다. 두 번의 사격대회에 출전했을 때 실수했던 부분을 되새기며 하나씩 보완했고, 탑 헬리건 출신들을 찾아다니며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특히 탑 헬리건 출신의 박상문 준위에게서 토우 사격 노하우를 빼내기 위해 1주일간 매달리기도 했다. 그의 끈기에 결국 박상문 준위는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줬고, 이번 대회에서 이 소령은 토우 사격에서 표적 정중앙을 맞출 수 있었다.
이재호 소령은 뼛속까지 군인의 기운이 흐른다. 태생부터 그렇다. 그의 고향인 강원도 철원군 마현리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산 하나만 넘으면 북한 땅이 보이는 곳이라 집 주변에는 군부대가 많았고, 동네 사람들보다 군인을 자주 만났다. 군인을 친숙하게 생각하던 그가 조종사의 꿈을 갖게 된 건 중학교 때다.
"최수종씨가 출연했던 드라마 을 보면서 파일럿이라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천에 있는 큰댁에 가다 김포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보면서 '아, 멋지다. 저런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대학시절 알게 된 헬기조종사 한 분을 통해 헬기조종사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장교가 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육군 3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여 기갑부대에서 소대장으로 1년간 복무한 후 그토록 원하던 조종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조종사가 되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시력을 관리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공부하라고 하면 "책을 너무 많이 보면 눈 나빠져서 조종사가 못 된다"고 했다며 웃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헬기조종사가 되기는 쉽지 않다. 육군항공학교에 입교해야 하는데, 영어 성적, 근무 경력, 자질, 국사 등 다양한 분야의 평가를 거쳐 합격하는 사람에게 입교 자격이 주어진다. 입교했다고 모두 헬기조종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입교 후 3주간은 가입교 기간으로, 제자리비행 훈련평가를 통해 1차 평가를 한다. 그리고 중급・고급 과정으로 올라 갈수록 고난도의 조종기술을 연마한다. 8개월간의 조종훈련을 마친 후 수료식에서 '마후라'를 목에 걸어야 비로소 헬기조종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이 순간 '이제야 내가 조종사가 되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고 한다.
조종사의 임무는 다양하다. 공격헬기는 주로 항공타격작전, 항공지원작전 등을 담당하며, 기동헬기는 병력, 물자, 장비 등을 공중으로 기동하는 공중강습작전, 그리고 물자 공수와 환자 후송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토록 원하던 조종사의 꿈을 이룬 그의 첫 '애마'는 탱크를 공격하는 AH-1S(코브라) 헬기. 그는 "첫 비행을 잊을 수 없다"며 "온 세상이 내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군인은 인생 그 자체다.
어릴 적부터 군인들과 함께 생활했고, 중학교 때부터 조종사의 꿈을 키워 마침내 이루었다. 조종사가 되어서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탑 헬리건이 됐다. 게다가 지금의 아름다운 아내 역시 군생활 중에 운명처럼 만났다.
"국군의날 55주년 행사를 위해 성남비행장에 지상안내장교로 갔을 때였습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있는 가운데,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계속 그 여자만 보였습니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제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건넸는데, 다음 날 연락이 왔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제복 입은 제 모습이 멋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군인이 된 후 나라에 대해 감사의 마음이 점점 커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보잘 것 없고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군에서 원하던 소원을 다 이루었고 출세했다는 말도 듣게 됐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예쁜 딸도 군생활을 통해 얻었고, 탑 헬리건도 되었습니다. 저는 늘 목표를 향한 열정과 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후 대형 공격헬기가 도입된다고 합니다. 그 헬기의 최초 조종사가 되어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나라와 국민과 군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적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전투형 항공부대 완성'을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