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문사 소금 재고량이 어떤가?"

법정(法頂) 스님은 한동안 운문사 비구니가 찾아오면 이렇게 묻곤 했다. 모두가 어려웠을 때 이야기다. 스스로에겐 엄격했던 스님이지만 어려운 이웃에겐 알게 모르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다.

오는 2월 17일(음력 1월 26일) 법정 스님 2주기를 앞두고 변택주 전 '맑고 향기롭게' 이사가 법정 스님과 크고 작은 인연을 맺었던 19명을 인터뷰해 '법정, 나를 물들이다'(불광출판사)를 펴냈다. 변씨는 12년간 법정 스님이 법문할 때 지근 거리에서 법회 사회를 봤다. 19명은 전 천주교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 원불교 박청수 교무, 조각가 최종태, 도예가 김기철, 화가 박항률, 20여년간 법정 스님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사촌 동생 박성직씨 등이다.

박청수 교무는 1991년 불일암 화장실 추억을 털어놓았다. 여느 집 대청마루보다 깨끗하고 '볼일을 마치면 배설물을 낙엽으로 덮읍시다' '나올 때 문 걸기' 등 글귀가 적힌 곳. "저는 말 잘 듣는 학생마냥(처럼) 고분고분 소리 없는 지시에 따랐어요." 운문사 강원에 재학하던 시절부터 법정 스님을 찾았던 진명 스님은 후학들의 지적에 노여움 없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법정 스님의 면모를 전한다.

원택 스님은 법정 스님의 '오보일기(五步一記)' 일화를 소개한다. 성철 스님의 저서 '본지풍광' '선문정로'를 법정 스님의 도움으로 펴낼 때 원고를 눈이 빠지게 읽다가 가끔 나들이할 때에도 몇 걸음 걷고는 메모하고 또 메모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