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밤 9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근처 '중국인 거리(연변거리)'에 들어서자 양꼬치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중국어로 쓰인 간판이 빨간빛을 냈다. 거리에 늘어선 3~4층짜리 건물들은 낡고 허름했다. 거리엔 흙먼지가 붙은 검은 점퍼를 입고 털모자를 눌러쓴 중국인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한 식당 앞에 중국인들 간에 멱살잡이가 벌어져 소동이 벌어졌다. 검은색 순찰복을 입은 사람들이 "술을 깨고 나면 다 좋은 친구인데 왜 이러느냐"며 싸움을 말렸다.

이들은 2009년 7월부터 활동하는 외국인 자율방범대. 대원은 총 17명이다. 주로 중국 국적 조선족들. 각자 매달 2만원씩 운영비까지 내고 있다. 이들은 야간 순찰은 물론 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 신고를 받아 긴급 출동까지 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2010년 667건에 달했던 폭력 사건이 2011년 543건으로 20% 넘게 줄어들었다.

가리봉동 중국인 거리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집단 패싸움이 되기 쉽다. 아는 사람이면 편을 들어 싸워주는 것이 이 거리의 법칙이다.

지난 2일 오후 구로구 가리봉동 주변 중국인 거리에서 중국 국적 조선족으로 이뤄진 외국인 방범대가 상인들에게 한국에서 지켜야할 각종 법규 등을 담은 홍보 전단지를 나눠 주며 순찰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가리봉시장 한 양꼬치집에서 싸움이 붙었다. 각각 서너명이 앉은 두 테이블 간에 시비가 붙었다. 이들이 각자 아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자 금세 40명의 중국인이 식당에 모였다.

방범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할 때 이미 상당수가 품에서 칼까지 꺼내 든 상태였다. 김용운 방범대장이 직접 출동해 이들을 말렸다. 김 대장은 "한국에서 누굴 찌르면 돈으로 물어준다고 끝나지 않는다. 감옥에도 가야 되고 벌금형이나 징역처분 받으면 강제 출국당할 수도 있다"며 설득해 싸움을 중단시켰다. 김 대장은 이 거리의 중국인들이 돈도 못 벌고 강제추방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거리에선 여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8월 술 취한 남자 둘이 시장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여자들이 아는 사람이라며 같이 편을 들며 싸웠다.

이때 여성 대원인 장원원(25)씨가 나섰다. 남자 대원들이 싸우는 남자들을 말리는 사이 장씨는 "남자들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외국인등록증 갱신에 불리한 일만 만들게 된다"며 여자들을 말렸다.

이 거리엔 패싸움이 아니더라도 곧잘 흉기가 등장한다. 2010년 5월 한 수퍼마켓 앞에서 술에 취한 한국인 남성과 중국인 남성이 다툼을 벌였다. 중국인 남성이 술에 취해 술병을 깨서 흉기를 만들어 찌르려고 했지만, 방범대원 정경원(30)씨가 막았다.

방범대원들은 "'중국인은 소란스럽고 난폭하다'는 한국인들의 편견을 깨고 싶어 방범대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가리봉동에 살며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력이 10년이 넘는 유덕춘(50) 대원은 "한국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칼을 차고 다니다 술 마시고 시비만 붙으면 칼자루를 잡는 등 추악한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자율 방범대에 참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