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을 너무 좋아해 동물 다큐멘터리는 빼놓지 않고 봤어요.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모습이 참 멋있잖아요."

록 그룹 YB의 보컬 윤도현(39)이 새 앨범의 주인공을 소개했다. 흰수염고래. 몸길이가 최대 33m, 몸무게가 179t까지 나가는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 그러나 오로지 작은 크릴새우만 먹고 살아 펭귄이나 물범 같은 다른 바다동물들은 사냥당할 걱정을 않는다. 1년 4개월 만에 미니앨범 '흰수염고래'를 발표한 YB멤버들을 최근 서울 합정동에서 만났다.

YB는 그동안 '록'과 '록 발라드'사이에서 비교적 보편적인 음악을 추구해왔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파격' 쪽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장중하고 은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접목시킨 '흰수염고래'를 타이틀로 삼고, 트로트로 분류할 수밖에 없을 '사랑은 교통사고'를 머릿곡으로 올려놓은 걸 봐도 그렇다.

'흰수염고래'는 "두려움 없이 헤엄치는 흰수염고래처럼 넓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지치고 힘들 때 숨기지 말고 말해달라"며 듣는 이 모두에게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노래. 곡 작업을 하며 다른 멤버들도 이 동물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힘이 생기면 제압하려 드는 인간 세상과 비교하고 싶었고"(김진원·드럼), "넓은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입혔으며"(허준·기타), "힘들고 어려운 지경에 빠진 듣는 이들 각자가 '날 위한 노래'로 받아들이길 바란다"(박태희·베이스)고 했다. 객원으로 활동하다 이번 앨범부터 정식 멤버가 된 영국인 멤버 스콧 헬로웰(기타)은 "나 역시 동물 마니아"라며 "기회가 되면 멸종한 코끼리의 조상 매머드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1년 4개월 만에 새 앨범‘흰수염고래’를 낸 YB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박태희·허준·윤도현·김진원·스콧 헬로웰.

YB 최초의 트로트인 '사랑은 교통사고'는 트로트와 록 비트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뽕끼' 가득한 노래. "놀랄 틈도 없이 피할 틈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꽝" 등의 톡톡 튀는 표현으로 사랑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했다. 노랫말은 윤도현이 썼고,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제목을 붙여줬다고 했다.

윤도현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가요무대'를 즐겨 보면서 트로트 리듬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며 "한국 가요의 초석을 닦은 선배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도 담았다"고 했다. "예고 안 하고 찾아오는 게 사랑이잖아요. 깨진 뒤 새로운 사랑을 찾는 커플도 많고요. 가정이 있다고 사랑이 안 찾아오겠어요?"(웃음)

신곡 '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는 윤도현이 일곱 살 딸의 꿈 얘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세련되고 강렬하게 리메이크한 '나는 나비'와 '잇 번스(It Burns)'도 실려 있다.

YB는 올해 각종 '일'에 엮이며 울고 웃었다. 록그룹 중 유일하게 MBC '나는 가수다' 출범 멤버로 참여해 인기를 얻었다. "우리를 2002 월드컵 때 급조된 밴드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나가수'를 계기로 오해도 풀고, 팬층도 어르신·어린이들까지 늘었어요. 앞으로 더 많은 선·후배 밴드들의 활약을 보고 싶습니다."(김진원)

지난 9월 "방송사측이 주병진 복귀를 위해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논란 속에 MBC FM '두시의 데이트' DJ 자리를 내놨던 윤도현은 라디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 "청취자와 쌓았던 정이 그리워 다시 돌아올 겁니다. 안 불러주면 라디오 방송국을 하나 만들려고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