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식 대표
대학 중퇴하고 용산서 장사1999년 '디시' 만들어 열풍
기업인에게 지분 넘기고 올해부터 월급사장으로

디시인사이드
디카 구매 사이트로 출발
폐인·개죽이·인증 등 수많은 유행어의 본거지
욕설·비속어 갤러리 등 'B급 문화의 온상' 비판도

페이스북·트위터?
"한국인들 속성으로 볼 때 커뮤니티 못 만들어내면 2~3년내로 시들해질 수도"

"인터넷 서비스는 친구찾기, 블로그, SNS(소셜네트워크) 등 다양한 변화를 겪었어요. 이런 것들이 '겉옷'의 변화라면, 우리는 가장 단순한 게시판 형태를 유지하면서 마치 '속옷'처럼 유행 타지 않고 서비스를 해왔어요."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가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개죽이’를 등장시킨 선거포스트 패러디 사진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폐인' '아햏햏' '개죽이' '딸녀' 등 수많은 유행어와 재치 있는 패러디물을 퍼뜨려온 국내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이하 디시)의 '유식대장', 김유식(40) 대표. 그는 요즘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월급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07~2008년 머니 게임에 휘말려 4개월 동안 구치소까지 다녀오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작년 말 '디시 폐인'(열혈 이용자)임을 자처하며 돕겠다고 나선 한 기업인에게 회사 지분을 넘기고 월급 사장이 됐다.

1999년 설립된 디시는 국내 인터넷기업 역사에서 꽤 '고참'에 속한다. 비슷한 시기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웃긴대학' 등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대부분 활동이 미미한 상황. 반면 디시는 지난 14일 하루 순 방문자가 처음으로 187만명을 돌파하며 여전히 방문자 수를 늘려가고 있다.

김 대표는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싸이월드 등 2년마다 새 서비스가 나왔지만, 2004년 네이버 블로그 이후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았다"며 "거의 6년 만에 해외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들어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속성을 볼 때 '커뮤니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2~3년을 넘기지 못하더라"고 했다. SNS 열풍은 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무협지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았던 그는 대학을 1년 만에 그만두고 용산전자상가를 드나들며 장사를 했다. 컴퓨터 부품이나 일본 게임기, DVD를 팔았다. 수익 모델은 용산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을 때 PC통신으로 주문을 받아 '싸게 많이 파는' 것. 1996년에는 한 손님에게 일본 애니메이션 '무사 주베이'를 사다줬다가 음란물 판매 혐의로 25일 동안 구속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영화가 바로 다음 해 국내 개봉관에 걸리는 웃지 못할 경험을 했다. 같은 해 강릉에서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PC통신에 '누구 소행인지 의심스럽다'는 글을 썼다가 경찰청 보안수사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조사 직후 PC통신에 '대공분실 이야기'를 올렸다가 또 혼쭐이 났다. 최근에는 구치소 경험을 모아 '개드립 파라다이스-유식대장의 구치소 체험기'란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좌충우돌 살아가는 모습은 스무 살 무렵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했다.

모든 것이 허용된 공간, 디시인사이드

디시는 'B급 문화'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심심찮게 받는다. '유흥갤러리' 등 청소년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도 있고, 욕설과 비속어가 올라오는 코너도 있다. 주제별 커뮤니티를 '갤러리'라고 부르는 것은 사진이 주(主)콘텐츠이기 때문. 지난해 음식갤러리에 올라온 '가짜 쥐식빵 사진' 등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디시라는 공간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 대표는 '예비군 훈련장'에 비유했다. "예비군복 입으면 순식간에 군대 시절로 돌아갔다가, 훈련 마치고 옷 갈아입으면 다시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남자들처럼 다른 사이트보다는 훨씬 느슨하고 좀 저급해도 되는 공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죠."

초창기에 이곳을 즐겨 이용한 '디시폐인' 중에는 화이트칼라가 많았다. 그가 처음 폐인 동호회에 나갔을 때 일화. "어느 날인가 한번 모이자는 말이 나왔어요. 저는 폐인 모임이라고 해서 일부러 점퍼 차림으로 나갔죠. 그런데 넥타이 안 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술도 양주를 마시더라고요." 이들을 중심으로 '폐인문화'니 '주침야활'(낮에 자고 밤에 활동·초창기만 해도 낮에는 인터넷이 느렸기 때문) 같은 말이 유행했다. 2008년 촛불 시위 때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영어 팝송 가사를 올려놓고 제목은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달아 '추천' 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알아본 '아고라 파블로프의 개' 실험도 이들이 벌인 짓궂은 장난이었다.

'엽기', '인증', '개념녀'가 시작된 곳

디시는 원래 디지털 카메라(Digital Camera) 공동구매 사이트로 출발했다. 카메라를 구입한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을 보고 하나 둘 갤러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1400개까지 됐다. 초창기 엽기 테마 사진이 유행했고, 이어 합성물이 인기를 끌면서 '개벽이'(벽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강아지) '개죽이'(대나무에 매달린 강아지) 같은 스타가 탄생했다. 연예인 테마 갤러리는 지금도 북적인다. 지난 12일 만들어진 슈퍼스타K 출연진 '버스커버스커'의 갤러리엔 단 하루 만에 1만 건 이상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정치·사회 갤러리'에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음식' '주식' '김정일' 등을 테마로 한 갤러리도 유명하다.

이미 대중화된 '인증'이나 '개념' 같은 용어는 이곳에서 처음 등장했다.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인증샷'이 없으면 믿어주지 않았다. 조금 생각할 거리가 있는 글에는 '개념게시물'이란 이름이 붙었다. 김 대표는 "다른 사이트는 댓글 논쟁을 벌이고, 소위 '논객'들이 설칠 때 우리는 사진 한 장으로 논쟁을 끝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했다.

'폐인'에서 '잉여'의 시대로

디시가 다른 사이트보다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김 대표는 "인터넷을 관통하는 정신은 재미와 정보인데, 우리는 처음부터 재미 쪽이 강했다"며 "그러다 '정치가 더 웃긴다'면서 정치에서 재미의 요소를 찾으면서 패러디와 풍자가 강한 사이트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2003년 탄핵 때 '물은 셀프'나 '솔로부대' '투표부대' 같은 합성사진이 등장했다. 성향이 서로 다른 갤러리들끼리 다툼도 심했으나, 요즘은 좌파 성향 이용자들은 많이 떠났다고 한다.

표현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은 문제다. 그는 "처음엔 사진에 조금만 변형을 가해도 인기를 끌었는데, 요즘은 어지간해선 관심을 못 끈다"며 "점점 자극에 무감각해지면서 강도가 세지는 것은 걱정"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어떤 말이 유행하고 있을까. 그는 "얼마 전부터 소위 남는 존재, 불필요한 존재를 뜻하는 '잉여'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며 "쓸데없는 '신상털이' 경쟁이 벌어지면 '잉여력 싸움을 벌인다'고 하는데, 이는 곧 '내가 너보다 더 할일이 없고 남는 시간이 더 많다'는 젊은 층의 약간은 자조적인 명명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