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개미
하세가와 에이스케 지음|김하락 옮김|최재천 감수
서울문화사|219쪽|1만2800원
'개미는 훌륭한 시민이다. 그들은 집단의 이익을 우선한다.' '인간은 어쩌면 벌보다는 개미 쪽에 가깝다. 제대로 쉴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그런데 좀 궁금하지 않은가. 왜 개미는 그렇게 부지런할까. 유전자 때문? 그렇다면 '게으름 DNA'는 왜 도태되지 않았을까. 거기에도 어떤 기능이 있는 걸까.
'일하지 않는 개미'는 사회성 곤충연구 분야의 석학 하세가와 에이스케가 에메리 개미를 중심으로 개미 사회의 작동원리와 인간사를 비교해 썼다. 생태학인가 싶다가, 경영서인 듯 보인다. 만물을 인간중심의 논리로 풀어내는 인위적 해석,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탐구가 정교하니 읽다 보면 수긍이 간다. 집요한 지식 탐구를 확장해 보편논리화하는 일본식 글쓰기의 미덕이자, 함정이다.
◇젊은 녀석, 센 놈은 아껴둬라?
열심히 먹이를 나르는 개미들. 이런 개미는 나이가 들었다고 봐야 한다. 일개미는 젊을수록 육아나 굴(窟) 경비활동을 하고 나이가 들면 먹이 조달에 나선다. 외부활동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남은 수명이 짧은 개미가 나서는 것이 조직에 미치는 손실이 적다. 조직 효율 중심의 구조는 또 있다. 극동혹개미 중 병정개미는 덩치가 크고 큰 턱을 가져 큰 먹잇감도 척척 잘 토막낸다. 그런데 먹이를 운반하다가 다른 종의 공격을 받으면, 가장 먼저 도망친다. 사소한 싸움에서 병정개미가 사망하면, 집단에 끼치는 손실이 더 크기 때문이다.
◇조직이 크면 조직원은 단순해진다
개미는 단순노동을 반복하지만, 조직 규모는 행동특성을 바꾼다.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박사가 분석해봤더니, 작은 조직에 속한 개미는 다른 개미에게 신호를 보내는 페로몬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단독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으며, 몸의 구조가 정밀해서 고장이 드물었다. 조직이 크면 반대였다. 중소기업 직장인일수록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고 그래서 재량권이 큰 데 반해, 대기업 직원일수록 분화된 업무를 처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작은 군락의 조직원은 단독수렵형 생태의 특성이 더 많이 남아있다.
◇멍청한 놈이 새 시장을 찾는다
개미라고 지능수준이 다 같은 건 아니다. 먹이를 갖고 복잡한 길을 따라 이동할 때, 페로몬 신호를 잘 받지 못하고 엉뚱한 데로 가는 멍청한 개미가 꼭 있다. 이런 개미가 있는 집단이 '지름길'을 찾을 확률이 더 컸다. 탈선없는 집단은 새 가능성을 찾을 확률도 낮다. 멍청한 조직원이 함께 있으면, 고위험·고수익형 구조가 생겨나는 것이다.
◇게으른 자가 있어야 조직이 오래간다
작은 자극에도 동기부여가 잘 되는, 반응 역치가 작은 부지런한 개미만 모아 놓은 집단 A, 반응역치가 큰, 쉽게 말해 둔하고 게으른 개미만 모은 집단 B. 두 집단 모두에서 80%는 일하고, 20%는 놀았다. 이건 여러 번 확인·증명됐다.
그런데 이래야 조직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동시에 발생한 다양한 일을 한꺼번에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면 분업이 필요한데, 이때 반응역치가 다른 조직원이 많아야 분업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근육에 젖산이 쌓이는 과정인 피로는 개미라고 다르지 않다. 개미나 벌에게서도 과로사가 발견됐다. 문제는 반응역치가 짧은 개미만으로 조직을 꾸렸을 경우, 동시에 피로도가 높아지고 조직은 망한다. 알 돌보기 같은 한 시도 쉴 수 없는 일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면 조직은 대를 잇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응역치가 다른 개미로 구성된 조직은 더 오래 버틴다. 부지런한 개미들이 지치면, 비로소 게으른 개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하지 않는 개미, 조직에게는 일종의 '여력'이다.
◇반응이 다르려면, 유전자도 달라야 한다
엉덩이가 무겁냐, 가볍냐 하는 '반응 역치'는 개미나 벌에 있어서는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벌집의 온도가 높아지면 유충이 죽는다. 벌은 온도가 올라가면 날갯짓으로 온도를 내린다. 한 종류의 정자로 생산된 벌로 구성된 집단 A와 각기 아버지가 다른 벌로 구성된 집단 B의 경우, B가 벌집 온도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 온도조절을 위한 날갯짓을 더 빨리 시작했다.
'개미나 벌이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인 존재인 이유는 그게 유전적으로 더 이익이 되기 때문'. '이타적 집단에도 일하지 않고 노는 무임승차자, 즉 프리 라이더가 나타나는데 무임승차자가 스스로 점유지를 일부러 제한할 경우 조직은 그리 빨리 망하지 않는다' 같은 이야기들, 인간사와 겹쳐지니 더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