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7일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LCD 총괄 사장과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을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6명, 전보 9명 등 모두 17명이 승진하거나 자리를 옮겼다. 인사 규모는 작년(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9명, 전보 7명)과 비교해 사장 승진자는 3명 적고 전보는 2명 많다. 사장단 평균 연령은 56.3세에서 55.8세로 소폭 낮아졌다.
◇삼성 "실적 중심 승진"
삼성전자 반도체·LCD 총괄 권오현 사장은 예상대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스타' 기질이 다분했던 진대제·황창규 전임 반도체 총괄 사장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묵묵히 일만 하고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성 핵심부에서는 "내실을 제대로 다지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권 사장이 맡고 있는 반도체 부문은 올해 유례없는 반도체 불황으로 미국·일본의 반도체기업들이 줄줄이 적자를 내는 속에서도 6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낼 전망이다.
권 부회장의 승진으로 삼성전자의 완제품(TV·휴대폰·가전)은 최지성 부회장이 총괄하고 반도체·LCD 부품은 권오현 신임 부회장이 맡는 투톱 시스템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또 강호문 중국본사 부회장이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대외 업무를 담당하고, 이윤우 부회장은 고문으로 물러난다.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은 2003년부터 7년간 삼성엔지니어링 CEO로 재임하면서 만성적인 경영 부진으로 삼성그룹 내 '못난이 삼형제' 계열사 중 하나로 불렸던 회사를 매출 9조원대의 초우량 플랜트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그가 작년 삼성물산 CEO로 자리를 옮기자 삼성물산 주가가 'CEO 기대 효과'로 일시 상승하기도 했다.
삼성전기 최치준 신임 사장은 핵심 전자 소재인 MLCC(다층세라믹콘덴서)를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점을 평가받아 삼성전기 최초로 내부 승진한 케이스이며, 삼성SDS 김봉영 부사장은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 사장을 맡는다. 삼성물산 김창수 부사장도 승진과 함께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으로 옮긴다. 또 일본 본사 윤진혁 부사장과 삼성물산 이동휘 부사장도 각각 승진해 에스원과 삼성BP화학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는다. 또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이철환 개발팀장(부사장)은 사업부 내의 특정 담당(개발)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장으로 승진했다.
◇3세 경영 강화와 재무통 퇴진
이건희 회장 자녀 중에서는 둘째 사위인 제일모직 김재열 경영총괄 사장이 삼성 엔지니어링의 경영기획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삼성은 "김 사장은 빙상연맹 회장으로 이건희 회장을 보좌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을 하면서 폭넓은 글로벌 인맥을 쌓았다"며 "해외 수주가 중요한 엔지니어링 사업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 안팎에서는 김 사장을 경영실적이 양호한 회사에 보내 다양한 경력을 쌓도록 배려한 인사라고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이번 인사에서는 또 공교롭게 이건희 회장의 두 딸인 이부진 에버랜드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한 회사의 CEO가 모두 바뀌었다.
에버랜드 최주현 사장은 고문으로 물러났으며, 제일모직은 황백 사장이 물러나고 삼성전기 박종우 사장이 옮겨왔다. 특히 이부진 사장의 경우 2001년 8월 그가 호텔신라 기획팀 부장으로 들어간 이듬해 인사에서 사장이 바뀐 것을 포함해 등기이사 9명 중 8명이 물러났고, 또 2009년 9월 그가 에버랜드 경영전략 담당 전무를 겸임할 때는 이듬해 인사에서 등기이사 4명 중 3명이 물러난 바 있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의 향후 계열사 영향력이 한층 커질 것이라는 예상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어, 이번 인사의 파장에 상당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 장원기 사장은 지난 7월 LCD 사업부진의 책임을 지고 LCD 사업부장에서 물러났지만 이번에 중국 본사 사장으로 부활했다. 삼성전자가 중국 현지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립하기로 하면서 장 사장을 사업 책임자로 꼽은 것이다.
삼성증권 박준현 대표이사가 삼성자산운용 사장으로 가고, 삼성자산운용 김 석 대표가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맞바꾼 것도 눈길을 끈다. 김 석 사장은 삼성자산운용을 국내 1위의 자산운용사로 키운 게 발탁 배경이다.
이밖에 삼성화재 지대섭 사장, 삼성생명 김상항 사장(자산운용부문장), 에스원 서준희 사장 등 대표적인 재무통 CEO들도 각각 삼성사회공헌위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사실상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