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젤러’는 세 남편을 뒀다. 출중한 외모에 반한 수컷 얼룩말들은 “미쳐 날뛸 정도로” 젤러를 좋아했지만, 정작 젤러는 상당히 콧대가 높았다. 3마리의 수컷 얼룩말 모두 젤러에게 말 그대로 ‘차여’ 죽었다. 뒷발로 수컷들을 찼고, 모두 비명횡사한 것이다.
하지만 ‘팜므파말’ 젤러도 세월의 힘은 이겨내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32살로 생을 마감했고,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그레비 얼룩말은 우리나라에서 대가 끊기고 말았다.
7일 서울동물원에 따르면, 젤러는 지난 1983년 3살의 어린 나이에 수컷 3마리와 함께 서울동물원으로 왔다. 이후 10년 동안 맑고 큰 눈에 촘촘하고 반듯한 검은색 얼룩무늬, 부드러운 갈기를 가진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했다. 관람객들에게도 고혹적인 매력을 뽐낸 젤러의 이름은 이때 붙여졌다. 1차 세계대전 독일의 미녀 스파이였던 마타하리의 본명인 ‘젤러’가 공식 이름이 된 것도 이때쯤이었다.
서울동물원 측은 젤러가 성숙해지자 그레비 얼룩말 2세를 얻기 위해 수컷 3마리 중 가장 건장한 수컷을 골라 합사시켰다. 하지만 젤러는 수컷의 적극적 구애를 거부하더니 급기야 뒷발로 배를 찼다. 수컷은 며칠을 앓다 숨을 거뒀다.
1994년에는 어린 수컷이 짝으로 정해졌다. 합사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이 수컷도 젤러의 맘에 차지 않았고, 뒷발 차기에 또다시 숨졌다. 3년 후 맞은 마지막 남은 수컷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수컷들은 하나같이 젤러에 미쳐 날뛰었지만, 돌아온 건 강력한 뒷발 차기로 인한 생의 마감이었다.
서울동물원 관계자는 “원래 그레비 얼룩말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당히 까다로워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더욱이 젤러는 ‘얼룩말계의 김태희급’이었다는 설명이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는 뜻의 ‘팜므파탈’을 빗댄 ‘팜므마탈’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수컷들이 모두 비명횡사하면서 붙여졌다. 결국 동물원 측은 젤러에게 ‘짝짓기 불가’ 판정을 내렸다.
얼룩말의 수명은 보통 25살. 젤러는 확실히 장수했다. 하지만 젤러의 장수(長壽) 뒤에는 뒷발 차기로 세상을 떠난 수컷들의 슬픈 사연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