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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아브르'는 핀란드 출신 아키 카우리스마키(54) 감독의 작품 중 아주 드물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영화다.

노동과 인간의 소외를 그린 프롤레타리아 3부작 '천국의 그림자'(1986) '아리엘'(1988) '성냥 공장 소녀'(1989)에서도 유머가 빠지지 않았지만, 소리 내어 웃기는 어려웠다. 따뜻한 마음으로 차가운 영화를 만들던 감독이 드디어 따뜻한 영화를 만들었다.

왕년에 파리에서 보헤미안 예술가 생활을 했던 구두닦이 마르셀 막스(앙드레 윌름스)는 아내 아를레티(카티 오우티넨)와 함께 프랑스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서 가난하게 살아간다. 마르셀은 엄마를 찾으려고 아프리카에서 밀입국한 소년 이드리사를 숨겨주다 경찰의 추적을 받고, 아를레티는 때마침 불치병에 걸린다. 마르셀과 이웃들은 힘을 합쳐 이 난관을 헤쳐나간다.

최근 유럽 영화에서 불법 이민자 문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기에 이야기 자체는 다소 진부하다. 그러나 카우리스마키는 이를 지금까지 보지 못한 코미디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표정 없는 인물들이 한 박자 빠르게, 혹은 느리게 툭툭 던지는 대사에 킥킥거리며 웃게 된다.

마르셀의 웃음기 없는 처연한 얼굴과 코트를 걸친 구부정한 뒷모습은 미국의 전설적 희극배우 버스터 키튼이나 찰리 채플린보다는 자크 다티(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는 코미디언)를 많이 닮았다.

21세기의 문제를 그리면서도 감독은 '옛것'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않았다. 마르셀이 사는 동네는 프랑스 20세기 초반의 어느 마을 같고, 여자들의 드레스나 집안 가구는 모두 그 시대의 빈티지다. 마르셀의 아내 이름 '아를레티'도 1930~40년대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명배우 겸 가수 이름에서 그대로 따왔다.

현대사회의 비인간성에 이래저래 고민을 많이 하던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결국 이번 영화에서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을 그려냈다. 선의(善意)와 상식, 예의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바로 르 아브르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8일 개봉. 전체 관람 가.


이것이 감상 포인트!

대사
"내 파란눈을 보고도 못 믿겠소?"(검은 눈을 가진 마르셀이 자신을 의심하는 한 이민자에게 하는 말)

장면
입원 중인 아를레티가 마르셀이 병문안 오기 전 정성 들여 화장을 한다. 마르셀이 문을 여는 순간 화장품을 이불 속에 숨긴다(애틋한 초로의 부부 간 사랑).

해외평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그린 스타일리쉬하고 감성적인 동화'(뉴욕타임스).

이런 분들 보세요
착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믿는 분들.